[데스크칼럼] 시간의 비일관성

입력 2023-09-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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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변엔 흡연자들이 많다. 이들은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금연을 시도했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실패를 경험한다. 다시 담배를 필 때마다 그들은 주로 이런 말을 한다. “안 피워서 스트레스 받는 게 건강에 더 나쁘다.” 얼추 맞는 얘기다. 당장 업무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싼값에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는 담배 한 대가 효율적인 수단일 수 있다. 하루 단위로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다만, 장기적으로 오랜 세월의 흡연은 결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대체로 공감하는 전개다.

담배는 극단적인 비교라 치고, 다른 얘기를 해보자.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사랑해 매일 그녀를 찾아갔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녀를 만날 때는 기쁘지만 돌아서면 지속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고뇌가 베르테르를 절망에 빠뜨렸다. 결론은 자살. 베르테르의 딜레마는 연인 로테를 만날 때는 더없이 행복했기에 맞는 선택이었지만, 끝에 가서 자신이 입을 상처를 줄이려면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는 게 옳다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시간의 비일관성’이라는 이론으로 1970년대에 정립했다. 현 시점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나중에는 최선이 아닌 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 쉽게 말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같은 얘기다.

시간의 비일관성은 흡연이나 연애처럼 일상에서 누구나 마주칠 수 있지만, 정책에서 이 같은 일이 생기면 문제는 심각하다. 불과 10년 전 ‘친환경차’ 마크를 달고 팔리던 디젤차가 지금은 환경파괴의 주범이 돼 일정 등급 이하로 떨어지면 서울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시대가 된 걸 생각해 보라.

정책이 짧은 시간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 시장은 혼돈에 빠지고 민생 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정책의 방향성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중심이 되는 원칙을 뒤집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 하락은 정책에 대한 수용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이 그짝이다.

역대 정권 모두 가계 빚이 급증하면 급한 불을 끄려고 갖은 대책을 쏟아내는 일을 반복해 왔다. 현 정부도 다를 바 없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우회 논란을 빚었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한도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가계 빚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50년 주담대를 찍고 틀어막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됐기 때문에 주담대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대출이 늘어난 것은) 집값이 바닥이니 대출받자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대출만 막으면 된다? 당장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총액을 줄이다 보면 지표상 은행 건전성은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높은 가격이 형성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일관된 정책이 없다면 언제든 같은 문제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 중도금대출, 보험약관대출 등 DSR 예외 대상 대출에 대한 ‘풍선효과’를 막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양치기 소년이 왜 죽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반복된 거짓말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비일관성이 정책에서 되풀이되면 결국 정부가 양치기 소년을 자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당장에 불어나는 부채의 총량을 보며 겁에 질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극약처방을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 아무도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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