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안재진(가명·56) 씨는 4년 전 광주 동구 계림동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른 부친상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곳은 안 씨가 20여 년 전 결혼식을 올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지방 예식장도 성업할 때였지만 어느샌가 결혼식장이 폐업하고, 그 자리에 장례식장이 들어선 것이다.
예식장 감소, 장례식장 증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29만5137건이었던 혼인 건수는 32년이 흐른 지난해 19만1690건으로 35.1% 줄었지만, 사망은 25만8589건에서 37만2800건으로 44.2% 증가했다. 혼인·사망 역전에 더해 출생·사망도 2020년 역전됐다. 지난해엔 12만3800명이 자연감소했다. ‘인구 절벽’에 장례식이 결혼식보다 흔한 게 당연한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적응한 건 장례식장뿐이다. 보건복지부와 국세통계포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1032개였던 예식장은 지난해 750개로 5년간 4분의 1가량이 사라졌다. 기존에 완만하게 줄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기 감소세가 가팔라졌다. 산부인과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크나, 장기 추이로는 감소세다. 산부인과는 2013년 1397개에서 지난해 1322개로 줄었다. 반면, 장례식장은 꾸준히 증가세다. 2002년(569개)에서 지난해(1104개)까지 20년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장례문화는 변화가 더디다. 한국에선 이틀간 조문객을 맞고 사흘째 발인하는 삼일장이 일반적이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조의금을 낸다. 고인과 유가족에겐 선택지가 좁다. 정형화한 장례문화는 유가족과 조문객 모두에게 부담이다. 형제자매 없이 부모의 장례를 홀로 치르는 경우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물리적 어려움마저 겹친다. 이런 이유가 겹치면서 부조문화에 부정적인 인식도 크다.
사회적으론 화장률이 2021년 90.8%까지 올랐지만,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화장시설(전국 62개)은 인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 7개에 불과하다. 또 매장을 대체하는 봉안(납골)시설 안치, 자연장은 매장보다 덜할 뿐, 국토를 잠식한다. 고령화와 탈가족화에 따른 무연고 사망자 증가도 문제다.
그나마 코로나19 유행기를 거치며 장례문화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조문객을 받지 않는 가족장과 일부 장례절차를 생략한 ‘작은 장례식’에 관심이 커지고, 정부는 대안으로 산분장 제도화와 온라인 추모관 마련 등을 추진 중이다.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장은 “한국의 장례문화는 죽어서도 불평등하다. 똑같은 장례방식은 누군가에게 부담이고, 또 수준의 격차를 만든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의 본질을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