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로 얻은 특허기술, 슬쩍 넘겨도…10명중 2명만 실형 [산업스파이, 구멍난 법망]

입력 2023-09-05 15:25 수정 2023-09-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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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9-05 15:2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정부 인증 ‘산업기술’ 유출해 신제품 개발…징역형 집행유예 그쳐
“처벌 감수할 만큼 큰 이익 보장”…법정형 대비 양형기준도 낮아
국회서 관련 개정안 수두룩…대법 양형위도 내년초 기준안 마련

▲  (이미지투데이)
▲ (이미지투데이)

의료기기 회사에서 생산업무를 맡아온 A 씨는 기기 설계도면을 USB에 그대로 옮겨 담은 뒤 퇴사했다. 상황을 알고 있는 회사 동료 B 씨는 도면을 일부 수정해 특허를 신청하자고 A 씨에게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한 중국회사. 이 회사는 반출한 도면을 기반으로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2018년 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빼돌린 도면의 의료기기에 적용된 기술은 보건복지부장관 인증 ‘산업기술’이었다. 두 사람 모두 기술유출방지법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2021년 6월 “국내기업의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기술탈취‧절도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심도 “죄가 매우 중하고, 국가경쟁력 및 산업 발전에 중대한 위협을 가한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 씨가 받은 형량은 징역 1년. B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재판부는 설계도면을 가진 후발회사가 기술격차를 단숨에 극복하고, 더 개량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피해회사의 정확한 피해액 산출이 어려운 점, 둘 다 초범인 점 등을 양형 사유로 들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이투데이DB)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이투데이DB)

OLED(자동차 및 모바일 디스플레이 양산용 능동형유기 발광다이오드) 관련 특허 173건을 가진 중견기업에서 주임으로 근무하던 C 씨도 회사 사무실에 저장된 설계도면 파일 468개를 개인 컴퓨터에 옮겼다. 결재권자인 과장의 아이디로 로그인해 스스로 반출결제한 뒤 개인 사용을 위해 외부로 발송한 것이다.

이 회사의 기술 역시 산업통상자원부 인증 ‘산업기술’에 포함됐다. 1심은 2021년 4월 C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무겁고, 부정취득한 정보의 양이 방대하며 피해 회사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범행으로 회사의 손해가 현실화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점 등 감형 사유도 적혔다.

5일 대검찰청의 ‘기술 유출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1월까지 8년 간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65명이다. 이 중 292명(80%)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을 산 사람은 73명이다. 실형을 받더라도 평균 형량은 징역 12개월, 집행유예의 평균 형량은 징역 25개월에 불과했다.

이에 산업기술 유출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용두사미로 끝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기업이 돈과 시간을 들여 고유 기술을 확보하는 수준에 비해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 유출의 경우 3년 이상 징역과 15억 원 이하 벌금을 동시에 부과한다. 일반 산업기술은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 벌금이다. 이마저도 2019년 9월 대폭 상향된 수치다. 첨단산업의 경우 5년 이상 징역과 2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사례는 많지 않다. 현재 양형기준은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범죄의 형량을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 가중사유가 있는 경우 최장 징역 6년으로 정해두고 있다. 국내 유출은 기본 징역 8개월~2년이고 가중처벌해도 최장 4년에 그친다.

정창원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술유출 범죄가 많은 이유는 결국 잘 넘어가기만 하면 보장되는 이익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며 “형사처분은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민사 소송을 하더라도 손해 인정이 어렵고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양형기준이 낮은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회사에 피해를 주고, 국부를 유출해도 징역 6년 이상 선고가 어렵다. 기술유출이 중대한 범행으로 인식되는 만큼 양형기준도 대폭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8일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을 대폭 정비하기로 의결하고, 내년 3월까지 기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기술유출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국회에 발의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만 10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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