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장악’ 공영방송 정상화 시급
정치굴레 벗고 공정성 회복해야
이번 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제6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물론 국회 추천 방송통신위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완전한 출범이라 할 수 없다. 더구나 그중에는 야당 추천 위원 2인이 포함되어 있어, 정치적 안배를 통해 방송정책의 민주성을 담보하겠다는 방통위 설립 취지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방통위가 정치적 갈등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9년 처음 설립된 후 지금까지 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정쟁에서 벗어나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집권 여당은 위원 구성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해 왔고, 야당 추천 위원은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는 행태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방송통제위원회’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TV조선 재승인 심사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기소된 사건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책 합리성만 소멸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책기능 자체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다. 언론개혁이란 이름으로 정권과 여당이 직접 언론 통제체제 구축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집권 전 야당 시절 강하게 추진했던 공영방송 개정 법안을 백지화하고,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하려는 방송법 개정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정권에 비판적인 인터넷 매체와 가짜뉴스 규제에 소극적이었던 방송통신위원장을 중도하차시키기도 했다. 그 대신 정권 말기에는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완전히 박탈할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완전히 형해화하고, 정권이 직접 언론 통제 정책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대처해야 하는 방송 현안들은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10년 넘게 추진되어왔던 매체 기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통합법 제정’, 갈수록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글로벌 OTT 규제’, 그리고 고질적인 ‘방송시장에서의 공정경쟁’ 같은 정책 현안들이 거의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최근 TV홈쇼핑 사업자들의 송출수수료 협상 거부 움직임은 방송시장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사실상 우리 방송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주 재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정책 현안이다.
더 심각한 것은 방송시장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통신 정책이 거의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방송을 둘러싼 정쟁으로 중요한 통신 정책들이 치밀하게 논의되지 못하거나 때로는 논의조차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각종 통신 관련 지표들이 크게 하락해 있다. 이런 이유로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대신 독임제 부처로 전환해야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물론 출범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당면해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언론노조가 장악하고 극도로 황폐해진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신임 방송통신위원장도 공영방송 정상화와 방송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핵심 정책목표라 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들이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언론장악으로 잘못 인식되지 않으려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적 합리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방송통신위원회는 최악의 환경에서 출범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정국은 최소한 1년 가까이 야당 동의 없이 어떤 정책도 추진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통상 집권 초기에 언론개혁이 추진되었던 이전 정권들의 전례를 고려하면, 방송통신위원장이 밝힌 정책목표가 무난하게 추진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이 정치라는 굴레에 묶여있는 우리 방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막바지라는 사실이다.
방송의 정치적 공정성과 정책 결정의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방송통신위원회는 역설적으로 정치적 구성이라는 덫에 걸려 공정성과 민주성이 훼손된 무력한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새로 출범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기구의 존립 근거를 다시 입증하고 실현해야 하는 또 다른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 같은 방송정책과 방송정치를 함께 정상화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목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