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따지면 4대 그룹의 복귀가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경협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의 전환을 위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하는 과정에서 성사됐다. 한경협이 기존 한경연 회원사들을 넘겨받게 돼 4대 그룹 일부 계열사가 포함된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4대 그룹의 전경련 탈퇴 후에도 한경연 회원사로 남아있던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SK(주)‧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주)LG·LG전자가 회사별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재가입했다.
이들 기업은 다음 달 주무 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이후 한경협 명칭 변경과 함께 공식적인 회원사로 활동하게 된다.
글로벌 무대에서 4대 그룹의 위상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대표 경제단체인 한경협 복귀를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다. 한경협은 삼성 등이 탈퇴한 후에도 일본의 경제단체 연합회인 ‘게이단렌’과 양국 경협 테이블에 마주 앉기는 했지만 4대 그룹 없이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4대 그룹의 한경협 복귀에 관해 정치권력 유착 가능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만큼 불안 요소가 상존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두 번의 임시회의 끝에 전경련의 정경유착 행위가 지속된다면 즉시 탈퇴할 것을 조건부로 가입을 권고한 것이나, 이찬희 위원장이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정경유착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인적 구성원은 다 물러나야 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우려가 그저 기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경협의 역사는 격동의 시대와 함께했다. 한경협은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한 경제단체다.
당시 한경협의 설립 목적은 정치권력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1960년 4‧19 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몰린 경제인들은 재계가 합심해 정치에 대항하는 단체를 만들자는 의견을 모았다. 한경협은 사회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권에 돈을 대주면서 부정축재자 처리를 완화하도록 요구하는 등 대응해 나갔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박정희 정권이 다시 단죄의 대상으로 삼아 처벌을 강화했다. 그러나 결여된 정통성을 경제 개발로 만회하려는 박정희 정권의 필요에 부응하며 한경협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 됐다.
1968년 전경련으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크고 작은 정치 스캔들에 휩싸이며 태생적 한계와 정경유착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경협은 이런 과거를 뒤로 하고 혁신을 외치며 새 출발을 선언했다. 4대 그룹은 힘을 보탰다.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돌이킬 수 없다.
한경협이 환골탈태하려면 대대적 인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회장과 명칭을 바꾸고, 조직만 개편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어떤 모양이든 정치권과의 연결된 고리를 최대한 끊어내야 한다. 독하게 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 후에 또 어떤 고통이 따를지 모른다. 4대 그룹이 보낸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