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참 어렵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 일을 시작한 뒤 다시 채를 잡았다. 짬을 내서 연습도 해 보지만 그 작은 공의 움직임이 절대로 내 맘 같지 않다. 멈춰 있는 공을 치는 건데도 정말 쉽지 않다.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힘을 빼라고 다들 충고한다. 그러나 웬걸, 힘을 빼려는 굳은 마음이 오히려 힘을 주게 만든다.
힘을 빼라는 주문은 다른 스포츠에도 적용된다. 테니스나 배드민턴도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라켓을 휘둘러야 한다. 달리기나 수영, 자전거 같은 유산소 운동 역시 몸에 힘을 뺄 때 장시간 지치지 않고, 기록 역시 좋아진다. 공 던지기, 복싱도 마찬가지다. 이전 직장에서 꽤 오래 합창단으로 활동했다. 역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야 맑고 청량한 노래 소리가 나온다. 연습이나 공연 전 몸 풀기 체조가 필수다.
힘을 빼야 하는 원리는 육체적인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는 마음의 힘을 빼야 한다.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결의는 필요하겠지만,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이른바 붓 가는 대로 편안하고 욕심 없는 마음이어야 진솔한 글이 나온다. 논현로 필진으로 원고를 쓸 때마다 실감한다.
긴장과 부담 없이 편안하게 임하라는 의미일 거다. 매사에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풀어 오른 어깨를 반성하고, 자신을 낮추는 게 시작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 1년간 민간 경제단체에서의 근무 기간은 바로 어깨에서 힘을 빼는 과정이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항상 중심에서 일을 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만났고 원하는 정보는 어렵지 않게 얻었다. 내가 연락하기 전에 의당 먼저 연락이 왔다. 대부분의 회의를 주재하거나, 적어도 말석에 앉지는 않았다. 친구 모임에서조차도 가운데가 내 좌석이었다. 그래서일까? 먼저 공직에서 물러난 선배가 민간으로 진출하는 내게 제일 중요하다고 당부한 게 바로 겸손이었다.
민간으로 옮긴 뒤 어깨 힘 빼기에 주력했다. 경제단체 상근부회장으로서 모든 행사에서 가장자리를 먼저 찾았다. 대화를 주도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 많이 듣고자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만들어 준 약속에 바쁘다는 핑계로 느지막이 나타나는 일은 없어진 지 오래다.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행사를 마무리한 뒤 직원들을 챙기고 나서야 맨 마지막에 귀가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쉽지는 않았다. 우선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창업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배워 나갔다. 드라마 같은 성공스토리들 속에서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점은 놀랍게도 겸손이었다. 어깨를 세우고 거들먹대는 드라마 속 기업인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허상에 불과했다. 한 손에는 겸손을 가장 높이, 다른 손에는 도전과 혁신, 성실과 신뢰로 무장한 분들이었다. 과천과 세종에서는 알 수 없었던, 치열한 현장을 직접 확인하면서 어깨에 뭉쳤던 힘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30년 공직생활의 주된 과제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공직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민간에서는 신인이다. 당연히 더욱 겸손하게,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한다.조금쯤 부드러워진 덕분일까, 퇴직 후에도 한결같이 만남을 지속해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확인하게 되고, 공직자들의 언행 하나하나의 무게감도 더욱 크게 다가온다.
주제를 힘 빼기로 결정한 뒤, 비슷한 글들이 넘쳐나는 걸 확인했다. 더 나은 사람, 혹은 조직의 근본이 욕심 버리기와 겸손이라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뜻일 터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답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원리상 끊어지지 않아야 길이다. 여전히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불쑥불쑥 불평불만이 일어선다. 여지없는 죽비가 떨어지는데, 결혼 이후 30년을 함께 해 준 집사람의 애정어린 호통이다. 아직 ‘진짜로’ 힘이 빠지려면 멀었다고, ‘지금 여기’가 당신이 선 자리라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타인에겐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겸손한 자세로 더 많이 배려하고 수용하는 또 다른 1년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