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눈은 10일 새벽 일본 규슈 지역에서 북상해 한반도 해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오전 9시 20분쯤 경남 거제 부근 해상에 상륙, 오전 11시쯤 경남 밀양 남남서쪽 20㎞ 지점을 지났는데요. 상륙 직전까지 ‘강’ 수준의 강도를 유지하던 카눈은 상륙 과정에서 ‘중’ 강도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중심기압은 크게 낮아지지 않아 세력이 대폭 약화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리게 이동하던 카눈은 속도가 점차 빨라져서 시속 38㎞ 정도로 북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속도도 느린 태풍 축에 듭니다. 지난해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힌남노’는 상륙 당시 속도가 40~60㎞였습니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리면 태풍이 내륙에 머무는 기간도 길어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는데요. 카눈의 경우 곧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금보다 더 느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 북쪽 40㎞ 지점에 다다르면 속도가 시속 19㎞까지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카눈의 느린 속도에는 또 다른 태풍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카눈은 앞서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근처를 지나면서 큰 피해를 줬습니다.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에서는 1일부터 지금까지 800㎜에서 최대 1000㎜에 육박하는 강우량이 관측됐습니다. 이는 평년 8월 한 달 치 강우량을 넘어선 건데요. 최대 초속 42m의 강풍까지 불어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1만7000여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습니다. 규슈 지역 4개 현 133만 가구에 대피령까지 내려졌죠.
또 항공기 300편 이상이 결항됐고, 신칸센 등 열차와 선박 운행도 중단되면서 길이 막혔는데요. 카눈의 영향으로 태평양의 습한 공기가 일본 열도로 유입되면서 11일까지 기록적 폭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7호 태풍 ‘란’도 일본을 향해 북서진하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일 오전 9시께 발생한 란은 10일 오전 9시께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 근해에서 시간당 15㎞의 느린 속도로 북상 중인데요. 중심 기압은 980헥토파스칼, 최대 풍속은 초당 30m입니다. 최대 순간 풍속은 초당 40m, 중심으로부터 반경 110㎞ 이내에서는 풍속 초속 25m 이상의 강풍이 불고 있죠.
란은 향후 더욱 세력이 발달하면서 북서쪽으로 이동, 14일 이른 오전 도쿄 등 중부 지역에 접근할 것으로 보입니다. 15일에는 일본 동부 및 중부 전역이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눈의 여파로 배후 지역에서 발생한 선상강수대가 시간당 최대 300㎜ 이상의 많은 비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몰, 산사태 등 피해가 우려되는데요. 여기에 란의 상륙까지 예고되면서 추가 피해가 전망되죠.
그런데 란이 카눈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카눈의 이동 속도가 느린 건 란 때문이라는 건데요. 두 개의 태풍이 서로의 진로에 간섭한다고 합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1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카눈은) 아마 역대급으로 가장 느렸던 태풍으로 기록될 것 같다. 현재 시속 26㎞ 정도로 북진하고 있다. 내륙에 들어오더라도 26~28㎞ 정도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상청 통보문에도 카눈은 오후 6시께 청주 북북동쪽 약 40㎞ 부근 육상에 도달하면서 시속 26㎞로 느려질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반 센터장은 이 원인에 대해 “7호 태풍 ‘란’에 의한 후지하라 효과로 본다”며 “태풍이라든가 강한 저기압이 있을 때 두 저기압은 서로의 진로를 간섭한다. 태평양 쪽에 란이 있는데, 우리나라 쪽으로 태풍이 올라오는 걸 못 가게 하거나 혹은 다시 중국 쪽으로 가게 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거다. 중국 쪽으로 가지 못하고 올라오는 이유는 워낙 우리나라 서쪽 제트기류가 강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쪽으로 더 이상 못 가니까 (카눈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카눈은 이례적인 경로로 북상 중인데요. 1951년 이후 발생했던 태풍 중 처음으로 남북을 종단하는 태풍입니다.
그나마 카눈의 예상 경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태풍은 2002년 발생한 ‘루사’입니다. 루사는 전남 고흥에 상륙해 이튿날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를 대각선으로 관통한 바 있는데요. 당시 인명 피해만 246명에 달했고, 재산 피해도 5조 원을 넘었습니다. 이때 강원 강릉에는 870㎜의 비가 내리면서 우리나라 기상관측 역사상 일 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죠.
카눈도 거센 비를 쏟아낼 것으로 보입니다. 12일까지 강원영동에는 500㎜ 이상의 물폭탄이 쏟아지겠는데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도 최대 200㎜의 많은 비가 예상됩니다. 특히 강원영동에는 10일 시간당 100㎜의 비가 집중되기도 하겠습니다.
남해안과 경상권 해안을 중심으로는 최대 순간 풍속 초속 40m 안팎의 매우 강한 돌풍이 불겠습니다. 초속 40m 정도면 정상적으로 달리던 기차가 탈선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죠. 가로수가 쓰러지고,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에 태풍 영향권에 들기 시작한다면 외출을 자제하고, 저지대나 지하에서는 침수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 앞선 장마로 지대가 약화한 터라 도로나 산 주변에서는 산사태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란의 한반도 영향은 아직 미지수인데요. 박정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6호 태풍이 지나간 이후 우리나라 부근의 기압계가 재편될 텐데, 7호 태풍은 현재 예상대로라면 먼 태평양 쪽에서 발달해서 일본 쪽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쪽에는 아직 예측 기간이 길기 때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압계가 태풍이 한 번 지나면 재편되면서 길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래서 최신 기상정보, 태풍 정보를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