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처리 난망…전문가 "총선 다가올수록 더 악화"
"왜 고속도로 종점을 바꿨나. 정부여당에 요청한다. 국정조사를 시작하자"(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달 12일 최고위원회의)
"건축 이권 카르텔의 부패 실체를 규명하고 배후를 가려내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2일 페이스북)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현 정부를 정조준한 여야의 '국정조사 신경전'이 한창이다. 합의 추진 가능성은 요원하지만 상대 진영에 불리한 이슈로 공세를 집중할 수 있는 만큼 총선 주도권을 쥐기 위한 수단으로 국정조사가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러한 기류가 더욱 짙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노선 변경 관련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 국정조사 요구서를 이미 제출했고, 국민의힘은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부실시공(철근 누락) 사태 국정조사를 시사했다.
송기헌 민주당 원내수석은 지난달 27일 국회에 관련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에 대한 제3자 개입 의혹 규명, 1조8000억원대 국책사업을 독단적으로 백지화시키며 위법적 행태를 거듭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의 책임을 묻겠다"며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을 위해 노선 변경의 주체와 경위 등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해당 국정조사 요구서는 같은 날 오후 본회의에서 국회의장에게 보고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LH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해 전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 당시 주택건설 분야 최고위직을 담당헀던 김현미·변창흠 등 두 전직 장관은 자신들이 당시 무슨 일을 했는지, 왜 이런 3불(부실설계·시공·감리)이 횡행했는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며 국정조사 의지를 밝혔다. 다만 국민의힘은 같은 날 관련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 차원의 감사 등 조치 이후 당내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필요 시 국정조사를 검토하자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양당은 상대 당이 추진하는 국정조사는 나란히 부정적이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시공이나 감리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감사원에서 감사할 수 있다"며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하면 되지 국정조사로 해결할 이슈는 아니다"라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전날(2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속도로 국정조사는 지금 불법이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며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국정조사는 주요 현안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권한이지만, 추진 의도·조사 범위·증인 채택 등 이견 탓에 정쟁만 거듭하다 불발된 경우가 많았다. 실제 21대 국회 들어서는 총 12건의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됐는데, 지난해 추진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외에는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조차 결과보고서는 여당이 보이콧한 채 야 3당 단독으로 채택됐다.
현재 거론되는 국정조사도 전·현 정부가 연계된 문제인 만큼 양당 모두 수용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일단 국정조사 이슈를 띄우고 보는 것은 결국 총선을 염두에 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국정조사는) 당초 원만한 추진을 기대하고 던지는 카드가 아니다. 협치에 무관심한 정치권에서 굉장히 일상화된 패턴"이라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싸움은 점점 더 격화할 것이다. 상대 당 인물에 대한 징계안도 더 남발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생산적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국정조사가 잘 안 되는 이유는 합의, 협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야가 싸움만 하다보니 국민이 부여한 국회 권한이 흐지부지되면서 위상만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라며 "진영대결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