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窓] 서정주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입력 2023-07-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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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년 전인 2013년, 이 땅에서 간행된 시집 중 우리 문학사를 빛낸 ‘최고의 시집’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시를 연구하는 문학평론가와 대학 국문학과 교수들 110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는데 75명이 응답하였다. 1923년에 간행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이후 90년간 간행된 시집 중 최고의 시집 10권을 선정해 달라고 하여 합계를 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시집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시인은 서정주였다. 서정주의 경우 ‘화사집’을 60명이, ‘서정주시선’을 8명이, ‘귀촉도’를 4명이, ‘질마재 신화’를 3명이 최고의 시집 10권 안에 들어간다고 하여 총 75명이 서정주의 시집에 표를 주었다. 서정주를 뺀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월의 시집조차도 63명만이 10권 안에 포함했기에 나머지 12명의 시집 10권 안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서정주의 ‘화사집’은 60명이, 백석의 ‘사슴’은 59명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56명이 10권 안에 포함시켰다. 선정작업에 응한 이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도 달랐고 시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랐다. ‘최고의 시집’ 10권 안에 30년대에 간행된 시집을 주로 선한 이가 있었고 생존 시인의 시집을 주로 선한 이가 있는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순수서정시를 좋아하는 연구자와 주제의식이 뚜렷한 참여시를 선호하는 연구자는 좋은 시집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

아무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48명이, ‘정지용시집’을 45명이, ‘이상선집’을 35명이, ‘달나라의 장난’을 28명이, ‘현해탄’을 25명이, ‘육사시집’을 24명이 10권 안에 넣었다. 이들 시인 가운데 오늘날 중고교 교과서에서 배제된 시인이 있으니 75명 모두가 시집 1권씩은 쓴 서정주다. 전북 고창의 미당문학관에 여러 번 갔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친일시가 여러 편 전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대학 때 수업을 들었던 제자로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친일행위를 제자라고 해서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교 교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모의고사에 서정주의 시가 출제된 적이 있었지만 본고사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수능시험에 서정주의 시가 실리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왜? 그는 친일시인의 대표주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참전을 독려하거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하는 내용, 일제에 충성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의 작품을 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본 지배가 영원히 갈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이 무슨 사과냐, 광복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글을 쓴 적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두환을 칭송하는 시를 써 몇 갑절 욕을 먹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 서정주에 대한 비판도 없다는 것이다. 1939년에 발족한 친일문인단체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은 이광수 김억 김동환 정인섭 유진오 이태준이었다.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뽑힌 이는 이광수였고 간사로 뽑힌 이가 박영희 이기영 유진오 김동환 정인섭 주요한이었다. 일제강점기 소설미학의 정점에 이른 이태준과 해외문학파의 일원인 영문학자 정인섭, 최초의 자유시를 쓴 시인이라는 영광을 누린 주요한이 이렇듯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찾아보면 훨씬 많은 문인이 ‘친일문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서정주의 시를 읽고 말하는 것은 난감한 일에 속한다. 양심을 단련케 한다.

이효석의 일본어 작품집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었다. 5편 소설과 9편 수필의 가장 큰 주제가 ‘내선일체’였다. 그들의 작품을 읽고 좋은 건 좋다, 나쁜 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광수 이효석 최남선 서정주 등을 배제하고 문학사를 가르칠 수는 없다. 그냥 파묻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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