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후] ‘시럽급여’ 논쟁의 가벼움

입력 2023-07-19 06:00 수정 2023-07-1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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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퇴사하고, 심지어 고용주를 압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업급여 정말 있어야 합니까?”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한 중소기업 대표가 갑작스럽게 최저임금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대화의 화제를 바꿨다. 실업급여였다. 숙련될만 하면 6개월만에 퇴사하고, 재취업하는 도덕적해이를 고용주들이 언제까지 받아줘야 하냐는 호소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가 실업 상태에서 재취업과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실직한 근로자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통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실업급여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히 높다.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소상공인 업계에선 실업급여가 실수령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 보니 근무태만으로 해고를 유도하는 등 제도 허점을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다. 스스로 일을 그만두면서 사업주에게 비자발적 퇴사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그간의 정으로 요청을 들어주지만 이런 사례가 누적되고, 주변에서 반복되다 보니 그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업계는 1년을 채우지 않고 그만두는 근로 회피자들로 인력난이 더 심하다는 불만을 쏟아낸다. 그간 소상공인, 중소기업계는 실업급여 제도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정부에 수차례 해왔다.

최근 정치권에선 실업급여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제도 개선을 위해 연 ‘실업급여제도 개선 민당정 공청회’에서 남자와 달리 여자,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아 쉬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선글라스를 사며 즐긴다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실업급여가 달콤한 보너스가 된다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도 언급됐다.

정치권의 이같은 발언은 실업급여 자체에 대한 폄훼로 보인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하면서 누군가는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근로자가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회사가 자발적 퇴사를 강요하는 등 갑질을 행하는 사례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발언은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막고 사회적 갈라치기를 부채질하는 행위로 비춰진다. 실제 시럽급여 발언은 발전적인 논의가 아닌 야당의 맹폭에 불을 지폈다.

인력 문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코로나로 인한 인력 유출, 도심 인구집중, 저출산과 인구감소 등 사회적, 구조적인 인력 문제로 존폐의 기로에 직면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업계에 정부가 새 판을 짜주지는 못할망정 여자, 청년, 시럽급여 같은 키워드로 논의 자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은 이들의 인력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공청회 날 한 여당 의원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방향에 공감했다”고 했다. 사실상 하한액 낮추기와 제도 폐지로 정책 방향을 끌고 가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 아니었나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낮추고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단순화 하기보다 악용할 여지가 없도록 보완해 제도 자체를 ‘관대하지 않게’ 재정비 하면 된다. 최저임금을 감안해 실업급여 수준을 설정하고, 장기근속자가 실업급여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일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 않고, 동시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실업급여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선 논의의 단순화와 부정한 프레임 씌우기보다 무게감 있는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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