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부는 집값 하락기 때 규제 완전 철폐를 약속했지만, 정작 집값이 들썩이자 핵심지 규제는 여전히 붙들고 있다. 국회는 정부와 엇박자를 내면서 당장 부동산시장에 필요한 규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정책당국은 물론, 민간 건설단체까지 정치권 인사로 점철돼 있다. 부동산 정책의 정치화가 부른 씁쓸한 자화상이다.
5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삼성동, 청담동, 송파구 잠실동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있다. 지난달 7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이들 지역에 대한 규제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정 기간은 내년 6월 22일까지다. 지난 4월 강남구 압구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양천구 목동과 성동구 성수 일대까지 포함하면 서울 핵심지는 규제로 꽁꽁 묶인 셈이다.
토지거래허가제는 대표적인 부동산 규제 대못으로 꼽힌다. 부동산 투기나 집값 상승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지자체가 설정할 수 있다. 규제 지역에선 사전에 담당 지역 시장이나 구청장 등의 허가를 받아야만 매매를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집값 안정을 위해선 토지거래허가제가 필수라는 태도다. 이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과 전국 집값 상승의 견인차가 강남이므로 (집값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며 “원칙을 갖고 예측가능한 정책을 펴겠다”고 말했다. 임기 중에는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를 포함한 핵심지 규제를 풀 생각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도 하반기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강조한 만큼 10월 예정된 토지거래허가제 재검토 이후에도 규제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제는 해당 지역 거주자의 거주이전과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당장 지역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입주자대표회의는 5월 말 단지 외벽에 ‘잠실은 서울시의 제물인가? 재산권 침해하는 토지거래허가제 해제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거는 등 항의 시위도 이어갔다.
여기에 제도 실효성에도 물음표가 뒤따른다. 정작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놔도 해당 지역 집값은 꾸준히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기준(지난달 26일)으로 서초구는 0.12% 상승했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각각 0.11%와 0.26%씩 올라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가 정책 연장을 결정했지만, 강남 3구는 지난달 내내 집값이 올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남 3구는 토지거래허가제 등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부동산시장 경착륙 위험이 낮아지면서 수요가 유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규제 고삐와 함께 국회의 몽니에 시장에 당장 적용해야 할 정책이 하염없이 표류하는 상황도 이어진다.
올해 초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안으로 내놓은 실거주 의무 폐지안(주택법 개정안)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 완화안(재초환 개정안)은 이날 기준으로도 여전히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 중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적용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법안으로 정부가 시행령으로 즉시 적용한 전매제한 완화와 패키지 정책이다. 재초환 개정안은 재건축 추진 단지 소유자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의 환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골자다.
부동산시장은 이미 실거주 의무 폐지와 재초환 완화를 기정사실로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5월 서울 아파트 분양‧입주권 거래량은 80건으로 4월 55건보다 25건 급증했다.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부동산R114 집계)도 지난달 기준 0.04% 하락으로 지난해 8월 이후 최저 낙폭을 기록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 시행이 여야 간 논의 지연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장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건설업계에 정치권 입김도 여전하다.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토부 고위직과 산하 건설 관련 공기관 수장으로 정치권 인사가 줄줄이 낙하산으로 기용됐다.
우선 국토부는 지난달 29일 1차관으로 김오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을 임명했다. 1차관은 국토부 정책 중 주택과 건설 부분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교통 정책을 담당하는 2차관으로는 백원국 국토교통비서관이 선임됐다. 양 차관이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으로 채워진 셈이다.
특히, 김 차관은 정치 이력만 갖췄고, 주택과 건설 등 국토부 현안 관련 이력은 없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가 임명되면서 주택정책에 대통령실과 여권의 입김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른 건설 관련 단체에도 민간단체로 볼 수 있는 건설업 관련 협회에도 정치권의 영향력이 곳곳에 미친다. 박선호 해외건설협회장은 전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이다. 이은재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역시 전 자유한국당 의원 출신으로 전문성 결여 논란이 일었다. 이 밖에 최근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함진규 전 자유한국당 의원도 낙하산 인사 논란을 겪은 바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정책 당국과 정치권 영향력이 다른 업권보다 더 강하다”며 “국토부는 물론, 민간 건설단체까지 정치권 입길이 미치면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 밖에 각종 건설업 관련 규제 올가미도 여전하다.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관리에 고삐를 죄고 있다. 이에 관련 비용도 증가했지만, 정작 산업안전보건관리비(산안비) 계상 요율은 2013년 올린 뒤 10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에 대한건설협회는 정부에 상향을 요청하고 나섰다.
또 지난 3월 바뀐 건설사 벌점제도는 중견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건설사에도 분양 지연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 기존에는 한 건설사가 현장 10곳에서 벌점 3점을 받으면 현장 수만큼 나눈 0.3점을 계산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단순 합산 방식으로 바뀌어 건설사에 그대로 3점이 부과된다.
벌점이 많으면 선분양이 제한될 수 있다. 그동안 현장이 많은 대형건설사는 벌점 부담이 적었지만, 개선안으로 사정권에 들 수 있다. 현장 규모가 적은 중소건설사는 대형사보다 더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