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상품권 깡'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현모 전 KT 대표 등 임직원들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5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 전 대표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700만 원을 명한다"고 판시했다. 나머지 임직원들도 300만~4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구 전 대표는 이날 선고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개인과 비교하면 자금 동원력이 강한 법인의 이익이 과대 대표돼 민주주의의 원리를 침해한 사건"이라며 "법인이 개인의 지위를 차지해 개인 주권의 훼손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KT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정보ㆍ통신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고도의 준법 경영책임이 요구된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이해관계가 있는 관련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면서 의원 본연의 업무인 입법 직무의 공정성과 청렴성, 일반 시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이날 구 전 대표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구 전 대표 측은 "KT의 대외협력부서(CR)에서 피고인 명의로 정치자금 기부 요청을 받았고 돈을 송금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가족·지인 명의로 송금을 부탁받지는 않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사건에 적용된 정치자금법 제31조가 정치활동·정치의사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기 위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법 제31조는 국내외 법인·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고, 이들 관련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KT와 대관 담당 임원들은 2014년 5월~2017년 10월 상품권 대금을 지급하고 할인된 금액의 현금을 되돌려 받는 소위 '상품권 깡' 방식으로 부외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약 4억3800만 원을 불법 기부한 혐의를 받는다.
부외자금은 부외거래를 통해 조성되는 자금이다. 부외거래는 금융기관 직원이 예금주로부터 받은 예금을 해당 금융기관에 입금하지 않고 임의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구 전 대표 등은 같은 행위에 대해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두 가지 혐의로 기소돼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KT 새 노조는 "구 전 대표 등은 지난해 벌금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그동안 수차례 재판을 질질 끌다가 오늘에서야 결국 1심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평했다.
이어 "쪼개기 후원 사건은 구 전 대표 취임 시점부터 시작된 사법 리스크였고, 결국 오늘 현실화된 것"이라며 "구 전 대표가 연임에 성공했더라면 KT는 이번 판결로 또다시 혼란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