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집안일을 못하게 돼 이곳에 왔다. 가족들은 고향에 남아있는데, 계속 이곳에 찾아오고 있다.”
벨치(87·남) 씨는 1년 전 아내와 함께 독일 호프눙스탈러 로베탈재단이 운영하는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장기요양시설)에 입주했다. 벨치 씨는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4~6인실이 널린 한국과 달리 독일의 요양시설은 대부분 화장실과 욕실이 달린 1인실(부부 2인실)이다. 입소자들에겐 독립생활이 보장된다. 시설 종사자 1인당 입소자 수는 1대 1에 육박한다. 공용공간은 대소변 냄새 등 없이 쾌적하다. 로베탈재단은 교회(개신교) 단체다. 독일에선 종교단체와 민간단체가 장기요양 서비스 공급의 핵심주체다.
독일의 장기요양시설은 대체로 서비스 품질이 높다. 장기요양 2등급을 기준으로 시설 이용료는 월간 총 2329.56유로인데, 이 중 장기요양보험에서 1262유로가 부담된다. 나머지 1067.56유로는 본인부담이다. 본인부담은 국민·퇴직연금 등 공적연금에서 차감되고, 부족분은 공적부조(재정지원)로 채워진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본인부담이 크기에 수요자들은 더 좋은 시설을 선택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설 간 서비스 품질 경쟁이 생긴다.
주별 공적의료보험 의료지원단(MD·Der Medizinische Dienst)은 장기요양등급과 서비스 품질을 평가한다. 카터감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MD 장기요양 담당자는 “서비스가 아주 안 좋으면 퇴출도 한다”며 “가끔 일어나는 일이지만, 시나 교회 시설도 퇴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의 체계도 비슷하다. 우플랑스브로 코뮨(기초자치단체 명칭)에서 운영하는 노인주거시설은 종사자(52명)가 입소자(48명)보다 많다. 시설 총책임자는 “종사자 80%가 준간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며 “입소자들은 본인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며, 수입에 기초해 본인부담 수준이 결정된다. 주거비를 못 날 땐 재정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독일 장기요양체계의 특징은 수급자의 선택권이 보장된단 점이다. 노인(65세 이하)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으며, 등급자는 시설급여, 재가급여, 현금급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재가급여, 현금급여는 ‘총액’으로 관리돼 한도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등급별로 급여가 정해진 한국과 대조적이다.
그 결과로 독일에선 재가급여, 현금급여를 활용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파독 광부 등 이주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모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해로(HeRo)가 대표적이다. 해로에선 대화·청소 등 일상생활지원 서비스를 주로 제공한다. 장기요양등급자들은 등급에 상관없이 재가급여의 한 종류인 경감급여(월 125유로)를 받는데, 이 경감급여로 일상생활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봉지은 해로 대표는 “여기에선 한 달 경감급여로 월 7.3시간을 이용할 수 있으나, 비싼 곳에선 2~3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다”며 “여기를 이용할지, 비싸지만 품질이 더 높은 곳을 이용할지는 수요자가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독일 전역에 있는 장기요양지원센터는 수급자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요한나 탈 하임 샤르텐부르크 장기요양지원센터 대표는 “정보를 전달하고,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1대 1로 심층상담을 제공한다”며 “친척이 케어하거나, 집에서 부모나 배우자가 케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도 안내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보건복지부는 현재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2023~2027년)’을 마련 중이다. 독일 등 유럽 사례를 참고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수급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