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AI 육성, ‘혁신-규제’ 잣대론 못푼다

입력 2023-06-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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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촉진과 비윤리성 사이 고민
이분법적 사고로는 이해 불가능
경제가치에 정치적 판단 더해야

최근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던 콘텐츠 생산을 인공지능이 맡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나 방송용 대본 작성, 그래픽 디자인, 추천서, 주례사, 설교문, 연설문과 같은 문서를 작성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의 코딩 또한 인공지능이 보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발전상에 놀라는 것도 잠시일 뿐,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마구잡이식으로 학습하고 생산하는 인공지능의 특성상, 개인정보의 도용 혹은 유출, 저작권 침해, 생성된 콘텐츠의 비윤리적 활용 등 기존의 법과 제도로는 다루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맥락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인공지능 사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기업은 혁신을 추구하는 경제 행위자로서 정부의 규제를 불필요하다고 여기는데 왜 인공지능 사업자들은 규제를 원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경쟁과 독과점의 논리와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독과점 관련 규제 역사의 전형은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비대해진 기업의 독점을 막기 위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주도로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했다. 정부 개입의 근거는 시장에서의 건전한 경쟁 확보였다. 자유로운 경쟁이 방해되면 궁극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쳐, 전체적인 거시경제 상황에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논리가 통했던 것이다. “시장에서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경쟁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논리는 자유주의 경제논리의 기본 중 기본이다. 독과점은 효율성의 적이다.

그런데 1970년대 보크(Robert Bork)라는 법학자가 독과점에 대한 신선한 주장을 펴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그는 “소비자의 후생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독과점이 용인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특정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높을지라도 그 회사가 제공하는 재화의 가격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굳이 독과점 행위를 정부가 제재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경쟁은 곧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근거하여 독과점을 보는 시각과 소비자의 후생에 초점을 맞추어 독과점을 보는 시각 간의 차이가 핵심이다. 전자는 미국에서 20세기 초 팽배했던 담론이고, 후자는 보크 이후 독과점 논의의 주류가 된 담론이다.

독과점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 인공지능을 놓고 높아지는 규제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자유주의 경제논리에만 충실하다면 정부는 인공지능 사업을 규제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 사업에 더 많은 개발자들이 뛰어들어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나은 서비스가 보다 싼 가격에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인공지능 사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는 행위는 더 이상의 경쟁을 막아 독과점을 확보하기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의 성격을 다르게 이해하면 또 다른 논의를 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 규제를 원하는 목소리의 일부는 인공지능을 핵무기와 같은 위험한 상품임을 전제로 한다. 무기 사업에서도 기업가들이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 행위가 중요할 수는 있지만, 무기가 오용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오용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고, 그 와중에 경쟁이 제한되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로 알려진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그 어떤 경제학자들보다도 자유로운 경쟁이 시장경제의 핵심원리임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프리드만은 심지어 국가가 의사 면허증을 발급하는 행위도 불필요한 규제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혁신을 낳고, 환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선택하면서 함량미달인 의사를 도태시키는 의료서비스 시장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업에 이러한 극단적인 시장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 행위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사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경쟁을 방해해 독과점을 강화하는 조치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의 비윤리적 사용을 억제하는 필수불가결한 조치일 수도 있다. 한편 인공지능 사업을 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맡기는 행위는 경쟁을 통한 혁신을 촉진시키는 조치일 수도 있고 전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조치일 수도 있다. 혁신과 규제가 서로 배치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풀 수 없는 딜레마다. 인공지능 사업은 지극히도 경제적인 현상이지만 정치적인 결단과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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