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건 ‘전의 전쟁’ 끝에 양측 “우리가 승리” 자평
엘리엇 “국가 상대 승소 첫 사례”
이자‧소송비 합치면 배상액 2배
배상금 ‘1조→690억’…7% 인정
남은 국제분쟁 5건…총 8300억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엘.피.(이하 엘리엇)는 중재판정부의 결론이 사실에 비춰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 사실관계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법원과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지난 수년간 입증되고 널리 인정된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20일(현지시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1조 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에 관한 입장을 이같이 발표했다. 특히 엘리엇은 “투자 대상국 최고위층으로부터 기인한 부패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투자자-국가 분쟁 사례”라고 논평을 냈다.
한국 검찰‧법원의 수사 및 재판이 ISDS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2015년 7월 엘리엇이 반대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연결돼 있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물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까지 주요 피고인들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엘리엇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한 지 5년 만에 일단락됐지만 한국 정부도 엘리엇도 서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평가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 측에 5358만6931달러(한화 약 690억 원)와 그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환율은 1달러당 1288원으로 계산됐다. 엘리엇 청구금액이 7억7000만 달러(약 9917억 원)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상원금 전체의 7% 가량만 중재판정부가 인용했다.
한국 정부는 나머지 93%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 거의 ‘전부 승소’에 가까운 선고를 이끌어냈다.
상황이 이런데 엘리엇은 어째서 본인들이 승리했다는 것일까. 사실 중재판정부는 양측 배상원금을 판정하면서 동시에 부대 법률비용을 산정했는데 이 금액이 만만치 않다.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게 지불할 법률비용은 345만7479.87달러(44억5000만 원)인 데 비해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법률비용 2890만3188.90달러(372억5000만 원)를 지급해야 한다. 8배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중재판정부는 배상원금에 2015년 7월 16일부터 판정일까지 5% 연복리 이자 지급을 함께 명했다. 손해액, 이자, 법률 및 소송비용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배상할 액수는 약 1억850만 달러에 달한다는 게 엘리엇 측 설명이다.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1400억 원에 이른다. 배상원금의 두 배를 넘어선다.
지난해 8월 10년 만에 마침표를 찍은 론스타 관련 우리 정부의 배상원금은 2억1602만8682달러(2782억 원)다. 두 사건 배상액만 합쳐도 4200억 원을 웃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국제투자분쟁이 아직 5건이나 남아있어 배상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다른 헤지펀드인 메이슨 캐피털 매니지먼트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2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스위스 승강기 제조업체 쉰들러도 1억9000만 달러 규모의 ISDS를 냈다. 2020년 중국 국적 투자자는 국내 한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후 이를 갚지 않아 담보권이 실행됐지만 우리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1억5000만 달러 규모 ISDS를 제기하는 등 6억4537만 달러(8300억 원)가 넘는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