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듯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일명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슈는 아니다.
일찍이 필리핀계 미국인 사회학자 라셀 파레냐스는 2009년 한국에 번역 소개된 책 ‘세계화의 하인들’에서 여성과 이주와 가사노동 간의 유기적 고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바 있고, 그보다 먼저 앨리 혹실드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필리핀에서 치과대를 졸업한 여성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변호사 부부의 자녀양육 도우미로 일하는 실제 사례를 보고하면서, ‘글로벌 케어 체인’(Global Care Chain)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10년 전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주제로 전문가 면담을 수행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1960년대 중반 리콴유 총리 시절 ‘로맨싱 싱가포르’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기획해, 대졸여성의 결혼을 적극 추진했던 적이 있었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었다.
‘로맨싱 싱가포르’는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여성들로 하여금 자녀를 많이 낳도록 해서 싱가포르 국민의 질을 높이겠다는 야심이 담긴 정책이었다. 여기에는 대졸여성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가가 직접 중매자로 나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었는데, 심지어 대졸 여성이 배우자 후보와 해외여행을 떠날 경우 여행경비를 대폭 지원해주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당사자인 대졸 여성의 반대에 부딪쳐 곧 좌절됐다. 여성을 단순히 애 낳는 도구로 간주하는 정부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저항과 함께, 로맨싱 싱가포르에 전제된 우생학적 논리 또한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대졸 맞벌이 기혼 여성의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출산율에도 도움을 얻고자 싱가포르 정부가 고안한 프로그램이 바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로는 싱가포르 인근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의 저학력 빈곤층 여성들이 대거 유입됐다. 가사도우미 임금의 범위는 국가가 결정하는데, 가사도우미에게 월급을 지급하면 그 액수만큼 세금 혜택을 제공받기에,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이 사항은 인구의 질(質) 관리를 중시하는 싱가포르 정부답게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는 취업 기간 제한과 함께 영주권 취득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고, 6개월에 한 번씩 성병 검사 및 임신 테스트가 의무사항으로 명기돼 있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가사도우미의 인권이 이토록 유린되고 있음에도 싱가포르 사회가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가사도우미에게 ‘예기치 못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그 자리에서 추방명령이 내려진다고 했다.
지난 주 화요일 KBS 9시 뉴스에는 마침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도입하는 데 대한 시민 의견을 묻는 대목이 등장했다. 인터뷰 응답 중에는 “저임금이 가장 솔깃하게 와 닿는다”는 솔직한(?) 의견이 가장 많았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있었다. 반면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통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을 받고자하는 정부의 의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응답이 주를 이루었다. “출산과 양육을 결정하기 전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 둘이 아닌데, 가사도우미 지원 정도로 해결 가능하리라 보는 정부 인식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 같다”는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싱가포르에서도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출생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저출산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국가가 한국을 필두로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이른바 ‘유교 자본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에,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고 싶다는 가족주의적 열망이 실상 출산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역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의 경우, 이미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음에도 굳이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저출생 문제 해결에 성공했다는 흔적도 없는 정책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합계출산율 0.71명(2021년 4분기)을 둘러싼 정부의 위기의식이 절박한 것인지 부박(浮薄)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