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활황이거나 성장주의 성격이라면 기존주주들은 자신의 권리를 모두 행사할 것이고 3자 입장에서는 참여하고 싶어서 구주주 청약에서 미달이 나기를 바랄 것이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기존 주주들의 유상증자 참여율이 너무 저조하고 공개모집에서도 흥행에 실패해 목표한 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사업자금이 부족해진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동안 결손이 누적된 경우에는 자칫 자본잠식에 빠져서 상장폐지 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자본잠식이 간당간당한 경우에는 기존 주주들 입장에서 보유한 주식이 휴짓조각이 될 수 있으니 반강제적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해서 자본잠식으로 인한 상장폐지를 막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자 전과 별다른 발전이 없는 모습으로 회사가 운영된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유상증자를 결정한 수많은 상장기업을 훑어보면 유독 바이오 기업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부분 과거에 주가 급등을 겪었지만 결국 신약개발이나 제품 상용화로 인한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버블이 꺼졌고 주가도 크게 내려온 상황이다. 모험산업 특성상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신용이나 담보가 없기 때문에 계속 사업을 이어가려면 투자자들을 모집할 수밖에 없다.
한참 주식시장이 좋을 때는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이 쏠쏠했다. 전환사채는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채권 형태지만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서 투자자가 상황에 따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서 회사가 1억 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1주당 1000원의 가격으로 주식 전환이 가능한 선택권을 주었다면 채권자는 이자를 받다가 만기 때 원금 1억 원을 돌려받든가 회사의 주가가 많이 오를 때 1000원의 가격으로 주식 10만 주를 받아서 매도하면 된다.
사실 전환사채를 발행한 기업 입장에서 만기 때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보다는 채권자가 주주가 돼 자본이 확충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되려면 열심히 사업을 해서 주가가 올라가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주식시장 자체가 호황일 때는 실적보다는 재료나 기대감으로도 주가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모험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전환사채 발행으로 손쉽게 자본조달을 했었다.
그러나 레고랜드 사태를 겪고 높은 금리와 경기 불황이 지속하면서 기업들의 채권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이 예전만큼 원활하지가 못해서 유상증자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주주들에게 다시 투자금을 요구하는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유상증자와 무상증자를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들도 눈에 많이 띈다.
무상증자는 회사의 자본 총액 변동 없이 주식만 추가로 발행해서 나눠 주기 때문에 무상증자 비율만큼 주가가 낮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1 대 1로 무상증자를 진행한다면 기존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에 신주 1주를 주는 것인데 자본 총액의 변동이 없으니 2주를 갖게 되는 사람의 재산도 1주 때와 비교해서 차이가 없다. 주식 수가 늘어난 만큼 주가는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상증자를 하면 유통주식 수 증가로 거래가 활성화돼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고 주가가 싸졌다는 착시현상도 불러일으켜서 단기간에 급등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가치의 변화가 없으니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다.
이렇게라도 해야 기존주주들의 마음을 살 수 있으니 돈이 아쉬운 기업들이 이 방법을 많이 써왔다. 이해는 가지만 이제는 이런 것보다는 확실한 기업의 비전을 제시해서 투자자들을 잘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주주 입장에서는 가처분소득도 줄고 시장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 증자대금을 마련하는 것이 부담되기 때문에 무상증자가 큰 메리트로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처럼 자본조달이 잘 되는 시절이 아니라 더더욱 기업들은 사업의 성장성을 입증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