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보호 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후 도주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뺑소니’는 처벌을 피하면서 도주치사죄와 음주운전 처벌에 관한 논쟁이 재차 부상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 부장판사)는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위험운전치사,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도주치사 등 혐의를 받는 A(40)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양형 이유에 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혈액암 진단을 받아 현재 투병 중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 중 도주치사에 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A 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초등학생 B 군을 친 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자신의 집 주차장으로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도주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충격해 역과하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당황해서 경황이 없었던 나머지 차량을 주차장에 두고 나서야 이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도주의 의사가 있었다면) 피고인의 주거지 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그대로 직진해 사고 현장에서 먼 곳으로 달아나는 것이 도주의 의사에 더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동한 거리 역시 20~30m 정도로 비교적 짧은 거리라는 점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현장에서 도주할 의사로 차량을 계속 운행하여 이 사건 주차장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피고인은 집 주차장에서 사고 현장에 돌아온 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해 차량의 운전자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119에 신고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피고인이) 당시 아이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피고인이 하기 싫은 건 아닌데 무서워서 머뭇거렸던 것 같습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앞선 2004년과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도주치사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즉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무죄)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재판부 역시 "비록 피고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구호 조치에 임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피해자를 구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부분 공소사실(도주치사)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1심 결과에 대해 양태정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고 후 현장을 떠났다면 그것으로 이미 도주는 기소가 되어 인정되어야 한다"면서도 "다만 다시 돌아온 사정은 양형 사유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판단은 항소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는 "도주치사에 대한 유·무죄는 앞선 대법원 판례처럼 엄격하게 적용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면 즉각적으로 면허를 취소하고, 영구히 면허 취득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며 "특히 음주운전 사망 사고와 관련해서는 법정형과 법원의 양형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1일 "운전으로 어린이를 다치게 한 경우, 더욱 즉각적인 구호 조치가 필요함에도 피고인이 이러한 조치를 곧바로 취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항소심에서 전부 유죄와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