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 원 규모의 횡령, 16조 원에 달하는 이상 외환거래 사건부터 최근 주가조작 사건까지 금융·자본시장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 원장은 금융권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인재로 해석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금감원의 역할론에 의구심이 생기면서 감독규정 제·개정권 회수 문제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금감원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금융권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은 올해부터 은행 이사회와 연 1회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면담을 통해 최근 금융시장 현안과 은행별 리스크 취약점에 대한 인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이사회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그는 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사 이사회와 면담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며 "지주마다 똑같을 순 없겠지만, 최고경영자(CEO) 선정 과정에서 평가방식을 명확히 하거나 우수한 인재들이 선임 과정에 들어오게 하는 등 큰 틀에서 기준을 제시하는 등 원칙론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가 금융권 지배구조를 개선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금융권은 직원 횡령과 이상거래 등으로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
이 원장이 취임하기 두 달 전인 지난해 4월 우리은행에서 700억 원대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이 원장은 취임 한 달만인 7월, 금감원은 간담회를 열고 우리은행 횡령 원인을 내부통제 기능 미작동으로 판단했다. 취임 직후엔 전 금융권에 걸쳐 16조 규모의 외화 이상송금 사태가 터졌다.
그는 금융권 신뢰 회복을 위해 조사 마무리 전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금융권에 선제적으로 주문했다. 주요 사고예방조치 세부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사고 취약업무 프로세스를 고도화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발생한 소시에테제네럴(SG)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거취를 걸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조직개편을 통해 조사 전담 인력을 늘렸다. 여기에 부서별 사건 구분을 폐지하고 조사 1·2·3국으로 전환하는 등 강도높은 쇄신안을 내놨다.
과거 조사와 검사 미흡에 대한 신뢰 실추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현안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재작년 감사원은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와 2020년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태 등을 대상으로 운영실태 감사를 실시해 검사·감독 업무 부실을 지적, 관련 직원에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감사원은 금감원이 사모펀드 운용 관련 검사·감독 부문에서 ‘태만’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만, 현안에 대한 결론은 아직까지 내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1월 19일 횡령 사고를 낸 우리은행 직원과 직속 부서장, 우리은행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금융위가 최종 의결하면 징계가 확정된다.
불법 외화송금에 대한 징계는 아직 금감원 제재심에서 논의 중이다. 불법 외화송금 관련 제재심은 4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 진행됐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상급기관인 금융위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보니 현장에서 금감원이 소외되면서 ‘금융감독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실제 금융감독위원장(현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직하던 시절(금융감독위원회 시절)에는 감독규정에 대한 많은 부분이 금감원에 위임됐다.
금감원 관계자 "금융위 회의때면 금감원 국장들은 권한이 없어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아있기만 할 수밖에 없다"라며 "금감원이 금융사에 힘을 못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감독규정은 법률과 시행령의 하위 개념인 일종의 시행 규칙이다. 보통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권역별 법령을 집행하고 감독·검사할 때는 감독규정을 따르도록 돼 있다. 현재 금감원은 감독과 관련한 시행세칙 제·개정권만 갖고 있다. 나머지 법률·시행령·감독규정 제ㆍ개정권은 금융위가 맡고 있다. 이는 감독정책에 대해 금감원이 금융위의 통제를 받는 구조적 특징에 기인한다.
금감원 일각에서는 사모펀드 사태, 키코 등 금감원의 관리감독 부재 탓에는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감독할 수 있는 권한도 주지 않고 책임만 묻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함께 나온다.
결국 역풍은 금감원 직원들이 맞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복현 금감원장을 앞세운 윤 대통령의 신관치의 피해자는 또 금감원 직원들이 될게 불보듯 뻔하다"라며 "이는 앞선 사례를 봐도 그렇다. 지난 2020년 청와대 감찰을 받은 직원들은 다음 인사때 물러나는 수순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