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들 떨게 만드는 ‘리니언시’…지침 재정비 요구 목소리 [스페셜리포트]

입력 2023-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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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담합행위에 가담한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두 곳에 ‘리니언시(형벌 감면)’ 신청을 접수할 수 있다. 두 기관 모두 범행을 자백한 공범의 죄를 면해주는 부분은 비슷하다. 하지만 두 기관의 성격이 다르고 형사 리니언시에 시행착오가 따르는 만큼 앞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가며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리니언시 제도는 현재 공정위와 검찰 두 기관에서 각각 운영되고 있다. 1997년 4월 도입돼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공정위 리니언시와 달리 형사 리니언시는 2020년 12월 만들어져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리니언시 창구가 공정위와 검찰로 이원화되며 면책에 대한 결정도 엇갈린다. 공정위-형사 리니언시 신고에 대한 혜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리니언시 신고 1순위 기업에 형사고발 면제와 과징금 100% 감면, 2순위에 형사고발 면제와 과징금 50%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검찰은 1순위에 기소 면제, 2순위에 형량 50% 감경 구형 혜택을 준다.

리니언시 신고를 받은 공정위는 해당 기업에 대한 고발 여부를 판단한다. 최근에는 검찰이 선제수사에 나서며 사건을 처분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가구담합 사건’에서 공정위는 고발 대상 기업을 정하지 않았는데, 검찰이 먼저 수사하고 기소했다.

물론 검찰은 이 과정에서 공정위와 수차례 협의체를 열고 관련 내용을 논의하고 조율했지만, 두 기관의 기존 관계와 절차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많은 말들을 낳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을 지낸 고진원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그간 공정위와 검찰은 실무협의회에 소극적이었고 상대적으로 수사 정보가 부족한 검찰은 형사 리니언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리니언시 접수 창구가 공정위와 검찰로 이원화되며 혼란이 생겼는데 앞으로는 한 곳에서만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하되 양 기관이 상호 협의하고 정보를 수시로 교류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4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특판가구 입찰담합'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검찰은 2조3000억 원대 가구 입찰 담합을 벌인 혐의로 국내 주요 가구업체 임원들과 법인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4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특판가구 입찰담합'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검찰은 2조3000억 원대 가구 입찰 담합을 벌인 혐의로 국내 주요 가구업체 임원들과 법인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형사 리니언시 사례가 아직 축적되지 않은 탓에 검찰의 일관성 없는 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니언시 기업 관련 정보는 공개 금지가 원칙이다. 앞서 빙과업계 ‘빅 4’ 법인들이 판매·납품 가격 등을 사전조율한 ‘아이스크림 담합 사건’에서 빙그레가 리니언시 1순위를 신청한 것으로 추측돼 왔다.

이에 관련 업계는 빙그레가 검찰의 기소를 피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검찰은 빙그레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빙그레‧롯데제과‧해태제과 임직원 4명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를 두고 검찰의 ‘공소권 남용’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리니언시 신청을 받아들여주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며 리니언시 내용과 절차에 따라 받아들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해당 사건에서 기업들은 공정위에 먼저 리니언시를 접수하고 긴 시차를 둔 뒤에 검찰에 리니언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의미한 정보가 리니언시로 접수되자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형사 리니언시 지침의 내용과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대검찰청 예규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 제15조는 리니언시 신청자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등의 강제수사를 하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가구담합 사건’에서 리니언시 1순위 신청 법인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리니언시 자료 신뢰도를 확인하고, 리니언시 신청 기업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다른 기업들과 같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형사 리니언시 지침을 손질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서둘러 형사 리니언시 1순위로 접수해도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1순위로 인정받지 않는다면 누가 뭘 믿고 관계 기업들을 배신하며 접수하겠는가”라며 “검찰에서 기존 리니언시 지침에서 그 기준을 확실하게 다듬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제도적으로 정비할 부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를 이루고 검토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리니언시는 법적인 근거를 뒀지만, 대검찰청 예규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은 규칙에 불과하다. 법 없이 지침으로 운영되는 만큼 추가적인 보완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줄여야한다는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처벌에 대해서 리니언시 혜택이나 어떤 경우에 접수를 받는지 등 제도가 완비돼야 한다”며 “그런 게 없으니 기업들은 불안한 거다. 형식과 실질이 다르게 운영되면 혼란과 불편, 법적인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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