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公기관 이전, 지방활성화 ‘마중물’ 되려면

입력 2023-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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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공공기관 2차 이전 예정

생활·산업기반 없이는 성공 못해

자족력 갖춘 곳 선정해 이전해야

일자리 창출·인력유입 효과 기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경제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이 채택된 것은 20년 전인 2003년이다. 공공기관을 수용하는 혁신도시가 전국 10곳에 선정돼 신도시로 조성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공공기관의 1차 지방이전은 2019년에 완료됐다. 현재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비롯한 지방도시에 총 153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해 운영 중이다.

정부는 올해 수도권에 있는 36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차 지방이전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해소하는 중요한 정책으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정과제로 밀고 있다.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한 지 몇 년이 지났으므로 그 효과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의 방침과 기준이 수립돼야 한다. 202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혁신도시 대다수가 일자리 창출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계획 인구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옮겨왔지만, 인력은 옮겨오지 않은 것이다. 순증가 인구의 상당수는 주변의 구도시에서 이주한 주민으로 광역 단위의 전체 인구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가령, 전북혁신도시에 순유입된 인구의 지역 분포는 인근 전주와 완주가 74%에 달하고, 수도권은 8%, 타 시도는 3%밖에 되지 않는다.

원거리의 다른 지역에서 혁신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이유는 생활·교육·일자리 인프라가 열악해 정주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주 환경은 단순한 건물과 시설이 아니다. 요즘 젊은 부부는 거의 맞벌이인데 가족이 혁신도시로 이전해 오려면 배우자의 일자리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학생 자녀를 둔 가족은 자녀가 전학 올 만한 좋은 학교와 학원이 있어야 한다. 직장이 이전했으니 생활기반을 떠나 낯선 도시로 이사 오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혁신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이전한 공공기관이 지역의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예 혁신도시 주변 지역에 산업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의 논리를 지방 차원에까지 적용하여 소외된 지역에 혁신도시를 신설하면서 공공기관 이전효과가 퇴색됐다. 경남혁신도시의 경우 창원과 진주가 경합했는데, 서부경남이 동부경남보다 낙후됐다는 이유로 진주가 선정됐다고 한다.

혁신도시를 지방에서도 낙후된 지역에 신도시로 건설하다 보니 모든 것이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였다. 혁신도시 초기에 가보면 허허벌판에 건물 몇 개만 서 있고 나머지는 빈 공터로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도시 형태를 갖추었지만, 여전히 썰렁하다. 외딴 섬처럼 고립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혁신도시에는 공공기관의 사업과 운영에 필요한 전산, 금융, 법률, 조사, 컨설팅 등의 서비스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기관 이전과 더불어 민간기업도 이전해 산업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금융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전북혁신도시를 금융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민간 금융기관의 이전을 장려했는데, 국민연금을 쫓아온 금융기관들은 혁신도시보다 전주시를 선택했다. 전북혁신도시에 본사를 개점했던 현대자산운용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2년도 못 돼 철수했다.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몇 개만 바라보고 이전할 민간기업은 거의 없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을 옥죄는 또 다른 제약은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다. 혁신도시 특별법에 따라 이전 공공기관은 일정 비율 이상의 지역 대학 졸업자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지역 인재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지방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비율이 너무 높으면 다른 지역에서 인재가 유입되지 못해 지방색이 고착화하는 역효과가 커진다.

KDI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공공기관 1차 지방이전은 단지 5만여 명의 인원을 10개 혁신도시에 5000여 명씩 배분한 것에 그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분절적이며 폐쇄적인 지방화로 인해 혁신도시에서는 공공기관 이외의 새로운 일자리와 인구가 늘어날 수 없다. 이런 실패사례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에서도 반복될 것이 우려된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국가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공공기관의 인력과 일자리를 소외된 지방도시로 나누어 보태주는 정도로 접근하면 안된다. 공공기관만 이전해서는 절대로 지방경제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공공기관과 더불어 인력과 기업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제2차 혁신도시는 산업기반과 정주여건이 갖춰진 지역으로 선정돼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만 따로 떼어 별개의 혁신도시를 신설하기보다는 자족력을 가진 도시 내에 위치해 기존의 산업 및 기업과 융합해 시너지 효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개별 공공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의 산업기반이 활성화해 민간기업이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혁신도시 내의 공공기관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은 마중물일 뿐,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인력이 유입되는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돼야 혁신도시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전초 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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