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저의 오랜 트라우마였던 아동학대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합니다. 저는 아동청소년 담당 사회복지사로, 가정폭력 상담원으로, 지역아동센터 총괄 관리자로 일을 하면서 아동 학대를 하는 가해자 부모, 그리고 피해자 아동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동학대라는 글자 앞에서 꿰뚫려버렸습니다. 저의 직업이 무색하게 무너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제 마음속에 반사회적인 욕구와 공격적 성향이 한 번씩 올라왔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을까? 그래서 양어머니가 나를 때린 것일까? 그래서 친부모가 나를 버린 것인지 자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저의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아동학대 피해자에게 보이는 학대 피해의 결과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아동 학대 피해자로서 나를 객관화해 쳐다보게 한 책입니다. 작가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저의 이런 성향은 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한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아동학대는 특정 이상한 가족, 이상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아이를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타인에게는 하지 않았을 언어적 비언어적 폭력을 남발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 ‘아빠’이고,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법제정 60여 년 만에 부모의 ‘자녀 징계권’이 삭제됐습니다.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게 민법의 징계권 조항이었는데, 이 조항은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아동복지법(2015년 개정)과 충돌하는 조항이었습니다. 한국은 61번째 체벌금지 국가가 됐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5년, 그 사이 자녀 징계권이 삭제됐고, 보편적 아동 수당이 도입됐고, 아동 보호 체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은 강화됐습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이 어떤 모습의 ‘사회의 영혼’을 드러내 보여줄지, 아직도 남아 있는 낡은 제도가 개선되길 기대해봅니다.전안나 책글사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