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위원장이 어제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등 선관위를 둘러싼 최근 논란과 관련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아빠 찬스’ 논란이 불거진 지 19일 만에 나온 사과다. “전수조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자체 수습에 방점을 찍은 발언으로 풀이된다. 외부 감사나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 가능성에 선을 그은 셈이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을 의원면직 처리할 것이라고 발표해 국민 공분을 키웠다. 전·현직 간부 자녀들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확산돼 민심이 들끓는 국면에 핵심 책임자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은 조속한 진화가 가장 급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선관위의 의혹은 낯뜨거운 ‘방탄 면직’으로 덮을 수 없게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기존의 고위직 6건에 더해 5건의 의심 사례가 추가로 드러난 까닭이다. 여기서 끝난다고 단언할 계제도 아니다. 고구마 줄기가 따로 없다.
추가 의혹은 고위직이 아니라 4·5급이 연루된 사례라고 한다. 선관위가 위아래 없이 철저히 썩은 조직이 아닌지 의혹이 번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응시자가 면접관의 심사표에 직접 인적사항을 적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판국에 총체적 책임을 면할 길 없는 노 선관위원장이 사과를 앞세워 ‘전수조사’를 들먹이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선관위가 앞으로 전수조사를 백 번 한들 누가 믿을지 먼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조직은 썩게 마련이다. 철칙이다. 선관위는 그러나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견제와 감시를 거부해 왔다. 심지어 각종 부실관리 의혹에 관한 감사원의 감사도 가로막았다. 최근엔 북한 정찰총국의 해킹 시도를 감지한 국가정보원과 행정안전부의 보안 점검 권고도 뿌리쳐 물의를 빚다가 마지못해 ‘점검 수용’으로 물러선 사례도 있다. 대다수 국민은 선관위가 왜 매사에 외부 검증 기회를 박차는지 알지 못한다. 이해할 수도 없다. 지난해 대선 때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공정성 시비를 자초한 기관이 이렇게 희한하게 구니 더더욱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선거 공정성을 지키는 헌법기관이다. 자유민주주의 보루나 마찬가지다. 그런 기관이 국가적 논란을 키우고 국민 의심을 사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최우선적으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나아가 감사원 감사, 수사기관의 전면 수사를 자청해 온갖 의혹을 깨끗이 털어낼 일이다. 노 선관위원장의 책임 있는 거취 표명도 불가피하다. 국회 또한 시급히 법제적 보완책을 마련할 일이다. 선관위에만 맡길 단계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