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23일 우리나라 연구팀이 남극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현화식물)이 곰팡이에 감염돼 병든 것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남극이 따뜻해지면서 문제의 곰팡이가 활성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지연구소 이정은 박사 연구팀은 2020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에서 남극 현화식물인 ‘남극개미자리’가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점차 하얗게 말라 죽는 것을 확인했다.
현화식물이란 생식 기관인 꽃이 있고 열매를 맺으며 씨로 번식하는 고등 식물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뉘며 남극에서는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 2종만 자란다.
위도 60도 이상의 남극에서 이끼류가 병원균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현화식물이 병든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해당 개체의 곰팡이가 과거에는 식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곰팡이(내생균)이었지만, 최근 남극이 20도를 넘는 등 이상고온을 보이면서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병원균)로 활성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극지 곰팡이 최적 생장온도가 15~20도인 것을 고려 시, 과거에 식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수준에서 내생균으로 존재했다가 기후변화로 남극이 따뜻해지면서 생장이 촉진돼 병원균으로 활성화한 것이다.
실제로 남극은 2020년 20.75도라는 전례 없는 이상고온을 기록했다. 또 세종기지가 위치한 서남극은 50년간(1959~2009) 연평균 기온이 3도 이상 상승하면서 빙하가 녹고 드러난 땅을 식물들이 빠르게 덮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도 함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연구팀은 앞으로 남극의 곰팡이가 병원균으로 활성화되는 데 기후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가로 분석할 계획이다. 아울러 곰팡이의 유전체 정보가 식물병해균의 진단이나 예방, 식물분해능력을 활용한 산업효소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실용화 가능성도 검토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해수부가 지원하는 극지연구소의 주요 사업인 ‘온난화로 인한 극지 서식환경 변화와 생물적응진화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으며 곰팡이 유전체 분석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Plant Disease 4월호에 실렸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남극이라는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현장 관측을 수행한 우리나라 연구팀의 노고 덕에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기후변화가 남극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밝혀내기 위한 후속 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