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상청구권-보험사 대위청구권 ‘충돌’…대법 “피해자의 직접청구권 우선”

입력 2023-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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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보험사고로 다수 피해자 손해 합계액
책임보험자의 ‘보험금 한도액’ 초과하는 경우
“손해배상채권 대위 취득했더라도
책임보험금 지급의무는 혼동 소멸”

책임보험 한도액이 다수 피해자의 손해 합계액에 미치지 못해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화재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자대위로 취득한 직접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이 우선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한화손해보험이 보험자대위로 취득한 직접청구권을 아무런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음을 전제로, 삼성화재해상보험과 디비(DB)손해보험의 혼동 주장을 모두 배척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2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폐유를 재활용해 세척유‧유기용제를 생산하는 이레화학이 폐유를 아세톤과 알코올로 분리하는 작업을 하던 도중 작업자의 부주의로 2018년 4월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사고로 인해 공장 건물 인근 사업장과 차량, 주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 이레화학은 화재로 인한 제3자에 손해를 배상할 경우를 대비해 삼성화재와 DB손보에 각각 보상한도 3억 원의 화재대물배상 책임보험계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당시 화재 사고의 피해자들은 화재 손해 보상 내용의 손해보험계약을 한화손보와 체결한 상황이었다. 피해자들에게 손해보험금 1억3550여만 원을 지급한 보험자인 한화손보는 가해자의 책임보험사인 피고들(삼성화재‧DB손보)을 상대로 상법 제724조 제2항에 따른 직접청구권을 대위 취득했음을 이유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피고 보험사들은 화재 사고의 다른 피해자들의 손해보험자이기도 해 같은 피해자들에게 손해보험금을 지급했다. 보상금액은 각각 삼성화재 16억5000여만 원, DB손보 3억990만 원가량에 달했다.

피고 보험사들은 원고의 청구에 대해 피고들의 손해배상채무와 피고들이 다른 피해자에게 손해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보험자대위로 취득한 직접청구권이 동일인인 피고들에게 귀속됐으므로, 이 사건 손해배상채무는 혼동으로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이레화학과 한화손보 간 화재보험 보상한도는 3억 원이고, 삼성화재와 DB손보의 기 지급보험료가 3억 원을 모두 넘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화손보 측 지급보험료 1억3550여만 원은 삼성화재와 DB손보에 구상할 부분이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에서는 책임보험 한도액이 다수 피해자의 손해 합계액에 미치지 못해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손해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후 보험자대위로 취득한 직접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 양 권리의 우열관계가 쟁점이 됐다.

가해자 보험회사가 다른 피해자의 보험자이기도 하여 해당 가해자에 대해 직접청구권을 대위 취득했다면 가해자 보험회사의 손해배상채무가 혼동에 의해 소멸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 것이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도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이 사건 화재의 다른 피해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채권을 대위 취득했더라도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책임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혼동 또는 변제로 소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하나의 보험사고로 발생한 여러 명의 피해자들 손해액 합계가 책임보험자의 보험금 한도액을 초과하는 경우 보험자대위에 따른 권리행사 및 민법 제507조의 혼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책임보험 및 직접청구권이 갖는 ‘피해자 보호’의 취지가 충실히 구현될 수 있게 됐다”고 판결의 의미를 평가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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