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꾸며 '불법 해외입양'…법원 "홀트, 1억 배상하라"

입력 2023-05-16 16:53 수정 2023-05-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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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혁 씨 (연합뉴스)
▲신송혁 씨 (연합뉴스)

40여 년 전 미국으로 불법 입양된 남성에게 법원이 입양알선기관의 책임을 인정해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신송혁(46·아담 크랩서) 씨가 홀트아동복지회(홀트)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홀트가 신 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신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원고 패소로 선고했다.

박 부장판사는 "홀트가 후견인으로서의 보호의무와 원고의 국적취득 확인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며 "이 같은 의무 위반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신 씨는 1979년 홀트를 통해 세 살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후 그는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등 두 차례 파양을 겪은 뒤 노숙 생활을 해야 했다.

성인이 된 신 씨는 그제야 자신에게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영주권 재발급 과정에서 경범죄 전과 이력으로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신 씨는 이 과정에서 가족들과 강제로 헤어지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신 씨는 홀트 측이 자신에게 친부모가 있음에도 가짜로 고아 호적을 만들어 입양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고아로 분류되면 입양 과정에서 친부모 동의 절차가 생략되는데, 이런 경우 양부모가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도 대리인을 통해 입양할 수 있었다.

신 씨는 2019년 1월 홀트와 한국 정부가 자신을 해외로 입양 보낸 뒤 국적을 취득했는지도 확인하지 않는 등 입양 절차 전후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홀트와 국가가 국적 취득 확인 의무와 사후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현재 멕시코에 거주하고 있는 신 씨는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신 씨의 법률 대리인인 김수정 변호사는 1심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홀트의 불법 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불법 해외 입양을 주도해 관리하고 계획·용인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이번 판결로 신 씨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안긴 게 아닐까 안타깝다”며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다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총 324명의 아이 입양…약 44%는 해외로

지난 11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총 324명의 아이가 입양됐다. 이중 약 44%에 해당하는 142명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됐다. 나머지 182명은 국내 입양이다.

입양은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신 씨의 경우처럼 입양 후 제대로 된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하면 또다시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특히 해외 입양의 경우 아이가 겪는 고통이나 혼란 등이 국내 입양보다 상대적으로 심각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성태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입양알선기관의 국적 취득 확인 의무와 사후 관리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는 해외 입양 절차와 사후 관리에 관한 전반적인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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