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는 지자체에서 도시를 대상으로 정책실험을 벌이고 있는데,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갈등이 벌어지는 곳도 있다. 하루 24시간 365일 사람들이 이동하는 도시를 대상으로 실험한다는 것은 도시 분야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1900년대 초부터 저렴한 자가용 보급으로 근대 도시공간은 자동차와 사람이 상호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자동차 중심 도시공간이 절대 우위에 있었다. 지금은 사람을 좀 더 존중하고 도시민의 삶을 증진시킬 수 있는 도시로 만들려는 도시공간 재구조화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사업은 자동차와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으로, 자동차 중심 도시인 시카고나 LA도 로드 다이어트, 보행공간 확보, 자동차속도 감소 등을 통해 자동차중심에서 사람중심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400m인 슈퍼블록들로 구성된 도시조직을 변화시켜 슈퍼블록 안쪽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쉽사리 들어올 수 없게 하고 있다.
자동차중심의 도시를 사람을 존중하는 도시공간으로 개편하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하지만 국내 정책은 반대로 가는 듯해 우려스럽다. 2021년 4월에 도입한 ‘안전속도 5030’ 제도를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현행대로 30㎞로 하되, 심야시간대 50㎞ 상향을, 그리고 기타 도로는 60㎞ 이상으로 자동차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 남산터널의 혼잡통행료 폐지 움직임, 연세로의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해제 시도 등이 모두 논란을 낳고 있다.
도시정책을 시행하다 보면 선진사례들을 벤치마킹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동차보다 사람중심 도시로 만들려는 선진국의 노력과 교통문화는 실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도시계획가 도널드 애플야드는 1981년 샌프란시스코의 도로 세 곳(각각 하루 2000대, 8000대, 1만5000대의 차량이 지나는, 차로 수가 다른 도로)을 대상으로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 수와 그 도로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교통량이 적은 곳의 사람들은 평균 1인당 3명의 친구를, 차량이 많은 곳의 사람들은 친구가 0.9명으로 교통량에 따라 인간관계와 지역 사회의 활력 정도에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사는 거리를 그리게 한 결과도 흥미롭다. 교통량이 많은 곳의 거주자들은 주로 길의 윤곽만을 그렸지만, 교통량이 적은 곳의 거주자들은 건물의 세밀한 특징이나 주변의 나무까지 그려, 거주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에도 교통량이 장애물이 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얀겔의 실험(The Human Scale, 2013)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현대도시에서는 인간이 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 자동차가 아닌 보행에 기반을 둔 인간중심의 도시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중국의 도시들과 뉴욕 맨해튼, 호주 멜버른 등에서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넘어가는 실험 결과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공공장소를 돌려주었을 때 그들의 도시를 행복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본네프(Woonerf) 운동은 자동차가 도시의 주인이라는 생각에 정면 도전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들은 도시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자동차는 손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후 도로를 지배했던 자동차와 다른 교통수단 사이의 팽팽한 갈등을 조정하는 작업이 세계적으로 한층 더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속도가 주는 편리성에 여전히 매몰된 우리에게 “도시는 더 이상 자동차 중심, 개발중심이 아니라, 인간친화·환경친화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얀겔의 말을 새겨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