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쌓인 ‘택배산’, 반복되는 택배갈등...문제가 뭔가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11 14:36 수정 2023-08-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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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물품이 쌓인 모습. (연합뉴스)
▲택배 물품이 쌓인 모습. (연합뉴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택배 수백 개가 거리에 놓여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광경이라구요? 맞습니다. 2018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벌어졌던 ‘택배 대란’이 재현된 것인데요. 상황은 비슷합니다. 아파트 측이 택배 차량의 지상 이용을 막자 기사들이 문 앞 배송을 중단하고 정문 앞에 택배를 쌓아둔 겁니다. 입주자들은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달라는 입장이지만, 택배 기사들은 배송 차량(탑차) 높이 탓에 진입이 불가능하다며 문전 배송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택배 대란’,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지상으로 다니지 마”…‘정문 배송완료’ 또 아파트 ‘택배 대란’

10일 경기도 수원시의 2500세대 규모 A아파트 측에 따르면 3월 회의에서 입주자 대표회의(입주의)는 긴급차량(소방·구급·경찰·이사·쓰레기 수거 등)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단지 내 지상 운행을 올해 5월 1일부로 전면 금지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입주의는 입주민들의 보행 안전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택배 차량 운행 안내문’을 통해 택배 기사들에게 지하 주차장(입구 높이 2.5m)을 이용해달라고 했습니다. 택배 차량 유도 표시에 따라 움직이면 2.5m의 차량까지는 운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노선 외에는 차고 2.3m까지만 운행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단지 내에 자동차 도로가 없는 만큼 지상 운행은 불가능하다는 방침입니다. 택배기사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대부분의 택배 차량이 2.5m를 넘는 걸 고려하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다는 겁니다. 결국 높이가 낮은 저상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기사들은 수백만 원 되는 개조 비용도 부담일 뿐 아니라 짐칸 천장 높이도 낮아져 작업하다 다칠 우려가 크다는 것이 택배기사들의 입장입니다. 이에 수원택배대리점연합(한진·롯데·CJ·로젠)측은 지난달 27일 A아파트에 공문을 보내 지상 출입 금지 시 아파트의 구조상 직접 배송이 불가하다며 ‘택배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생 방안 촉구했지만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아파트 정문에 택배 물품이 쌓인 그대로 방치되는 ‘택배 대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 불가”vs“저상 車 부담”

정문에 방치된 택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죠. 택배사 측은 특정 시간대만이라도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사고가 우려된다면 아이들이 학교·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만이라도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아파트 정문에 택배 보관소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데요.

입주자 대표는 “차량이 다니려면 도로를 만들어야 하지만 도로 자체가 없고 보행자 도로와 구분도 되지 않아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며 “현재 쿠팡이나 우체국 택배, 기타 새벽 배송 업체들은 모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배송하고 있는데 왜 택배 4사만 지상 출입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어 “지하 주차장 높이는 2.3m로 설계돼 있었지만 택배 차량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시공 과정에서 2.5m로 높이는 공사까지 진행했다. 택배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유도 표시를 하고 무인 택배 시스템도 마련한 만큼 저탑 차량을 배차해서 배송하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예고가 된 사안이고 한 달이라는 유예 기간도 거친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달 초부터 이 단지 아파트 정문에 택배가 쌓이게 됐고 택배기사들은 현관 앞 배달 대신, 정문 근처 보행로 바닥 면에 동별 표시를 한 뒤 택배를 그곳에 두는 것으로 배달을 끝내고 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전이 중요하다’는 의견과 ‘택배사 입장이 이해가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택배 대란’ 부른 지하주차장 층고 2.3m,왜 개선 안될까

이번 갈등은 앞서 벌어졌던 2018년 남양주 다산신도시와 인천 송도신도시 사건 때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당시에도 지하주차장 층고를 놓고 갈등을 벌였는데요.

그렇다면 왜 수년간 지하주차장 층고는 2.3m였을까요. 불과 0.4m 차이지만 지하주차장 층고를 2.7m로 높이면 땅을 더 깊게 파야 해 시공비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국토부 자체 자료에 따르면 1000가구 단지에서 지하주차장 1층 층고를 2.3m에서 2.7m로 높이면 가구당 약 130만 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하주차장 층고 2.3m 규정으로 층고 상향은 시공비 상승→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되는데 층고를 높이면 건설사의 시공 이익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분양가가 오르는 결과도 초래합니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는 다산신도시 택배 대란 직후 문제 해결을 위해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층고를 2.7m로 상향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지상을 통한 차량 진입이 가능한 경우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조합에서 2.3m로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2019년 1월 이후 사업 계획이 승인된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층고를 2.7m로 높여야 합니다.

다만 당분간 층고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관련법 개정 전 설계한 단지들이 최근 속속 준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제 지상출입부터 골프장 ‘골프카트’까지 등장, 해법 이미 나와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입주민과 택배사들이 협의를 통해 한걸음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일각에서는 택배대란 사태를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과 함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은 ‘안전하고 편리한 공동주택 택배배송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택배배송 시스템 개선방안으로 거점배송 방식의 도입과 새로운 택배배송 시스템 등을 제안했습니다. 거점배송 방식의 택배허브는 단지 내 특정 지점에 택배물품 공동집하장(거점)을 마련해 각 동까지 운반은 수레나 전동카트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인력 수급은 청각장애인(블루택배), 어르신(실버택배), 경력단절여성(오렌지택배)등의 사회적 약자를 활용한 일자리 사업으로 충원하자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는 실버택배를 활용해 A아파트와 같은 갈등 국면에서 절충안을 찾았는데요. 현재 해당 아파트에서의 실버택배 배송 금액은 일부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아파트 측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전동카트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한 곳도 있습니다.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는 전동카트를 직접 구입해 택배기사들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택배기사들은 단지 앞에 택배차를 세워놓고 배송 물품을 전동카트에 실어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차량 통행이 번잡한 출퇴근 시간과 아이들의 등학교 시간을 피해 택배 차량의 진입 시간을 따로 정했다고 합니다.

택배분쟁은 ‘차 없는 아파트’를 표방한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양상입니다. 함께 전향적인 자세로 머리를 맞대지 않는 한 택배 노동자들의 허리 펴고 일할 권리는 찾기 힘들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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