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하락과 수요 감소로 전세금 미반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임대인의 퇴로 격인 전세반환대출(전세퇴거자금대출)은 규제에 막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한시적으로라도 이를 허용할 경우 전세금 미반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정부와 시중은행 모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전세금 반환을 앞둔 집주인의 사면초가는 이어질 전망이다.
8일 정부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세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3월 집계한 전국 전세보증 사고는 1385건으로, 사고금액은 3월에만 319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 전체 사고 규모 3442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셋값 급락과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급감하자 미반환 사례가 폭증한 것이다.
문제는 집주인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전세반환대출을 받으려 해도 각종 대출 규제를 적용받아 이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집을 세놓고 월세나 전세 보증금으로 이익을 얻는 집주인 중 상당수가 은퇴한 고연령대인 만큼 근로소득이 적어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 범위를 정하는 DSR 규제가 더 불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등록임대사업자로 활동하는 집주인은 DSR이 아닌 RTI(임대업이자상환비율)를 적용받는 것 역시 전세 위주의 한국 주택임대사업 시장에서 불리하다고 분석한다. RTI는 임대사업자의 연간 임대소득을 연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이다. 현재 주택(아파트·빌라) 기준으로 125%를 적용받는다. 이는 연 1000만 원의 이자를 낸다고 가정하면 임대소득은 1250만 원을 넘어야 신규 대출이 나온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이 많은 임대사업자는 이자비용이 많이 들어도, 임대소득은 상대적으로 월세보다 적은 경우가 많아 규제 문턱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선 시중은행이 임대사업자 주택의 전세반환대출 문턱을 높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 임대사업자는 “은행들이 전세반환대출을 깐깐하게 심사해 DSR 한도가 충분해도 대출을 못 받는 임대인 늘었고, 특히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대출을 꺼리는 사례가 많다”며 “등기부등본에 등록임대주택임을 알리는 부기 등기가 돼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한 경우도 건너 들었다”고 했다.
이렇듯 전세시장 침체에 따른 역전세난으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지만, 금융당국 등 정부는 추가 규제 완화에 완고한 태도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시장 불안 관련 현안질의’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DSR 규제가 전세반환대출에도 적용되니 임대시장이 혼란스럽다. 한시적으로 임대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 규제 완화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DSR 규제 완화는 ‘정말 이것(규제 완화)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공감대가 없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은 앞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하면서 전세보증금 반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만큼 추가 대출 규제 완화는 불가능하다는 태도다. 실제로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지난달 30일 기준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금액 30조9000억 원 가운데 ‘임차보증금 반환’을 목적으로 1만761건(7.6%), 금액 2조6210억 원이 공급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무주택 또는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라 다주택자인 임대사업자에겐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임대사업자는 한시적이라도 대출 규제를 풀어 미반환 사태를 막자고 주장한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임차인 대부분이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해 들어오는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임대인의 전세반환대출이 허용되면, 임대인 대출금을 임차인 전세대출 상환에 사용할 것”이라며 “이러면 가계부채 총량 증가도 제한적으로 막을 수 있으므로, 이미 발생한 전세 관련 사고 수습에만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전세반환대출 규제를 풀어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