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인재들은 흔히 ‘스톡옵션 대박’을 떠올리지만, 생각보다 스톡옵션을 현금화해서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매년 약 1만 개의 기업이 새로 창업하는데, 코스닥에 상장하는 회사는 연 100개도 되지 않는다. 회사가 상장되고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확률이 1%도 채 안 되는 셈이다. 신규 상장 기업들이 상장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1% 확률 복권을 10년을 넘게 기다린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창업자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투자 라운드를 진행할 때 창업자의 구주를 일부 매각해 현금화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VC) 업계도 창업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이렇게 신주와 구주를 섞어서 투자하는 방식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일부 유니콘 기업 창업자들은 상장하기 전에도 주식을 매각해 이미 상당 금액의 주식을 현금화한 사례가 있다.
반면 스톡옵션을 행사한 직원들의 주식 현금화 사례는 적은데, 일단 상장 기업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 주식을 구매해 줄 매수자가 흔치 않고, 창업자와 달리 회사의 재무 현황이나 주식의 가치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회사의 배려로 투자 라운드 진행 시 직원들의 주식을 창업자의 주식과 함께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VC 입장에서 스톡옵션 행사 주식 매입에는 장단점이 있다. 신주 투자에 비해 다소 할인된 금액으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선 메리트다. 실제로 스톡옵션 행사를 비롯한 스타트업 구주 매입에 특화된 세컨더리 펀드도 꽤 결성되는 추세다. 다만 투자계약상 여러 조건을 부과할 수 있는 창업자 지분 매입과 달리 스톡옵션 행사 지분 매입은 아무런 법적 보호 장치가 없는 주식이라는 점에서는 매력도가 떨어진다. 보통 스톡옵션 지분은 1% 미만이다 보니 직원 여러 명에게서 조금씩 지분을 매입하는 행정적인 절차도 더 번거롭다.
유동성이 부족하여 현금화가 어려우니, 임직원 입장에서도 스톡옵션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운이 좋게 회사가 기업공개(IPO)까지 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휴지 조각이라는 인식이 있는 셈인데, 이 경우 회사 입장에서도 인재 유치 전략으로 스톡옵션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없게 된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외에도, 이런 주식 거래를 활성화하는 조치들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스톡옵션 행사 주식 매입을 주목적으로 하는 펀드를 결성하여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이 있다. 구주 매입 펀드가 유망 스타트업 임직원들의 스톡옵션 행사 주식을 매입해주면, 직원들은 IPO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현금화가 가능하고, 펀드는 IPO나 인수합병(M&A)을 기다려 큰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스톡옵션이 모 아니면 도인 로또가 아니라, 회사에 기여한 만큼 가치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 이러한 조치의 핵심이다.
다행히 최근 증권플러스 비상장과 같은 혁신 금융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비상장 주식도 어느 정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톡옵션 행사 주식을 유통할 수 있는 시장이 생기면서 스타트업들도 IPO에 대한 부담을 덜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스톡옵션을 통한 인재 유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혁신 금융 서비스 정책의 한계로 아직 통일 주식이 발행된 일부 스타트업의 주식만을 거래할 수 있고,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 등의 기관 투자자의 거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1:1 개인 간의 거래 외에도 비상장 주식 거래에 특화된 다양한 방식의 시장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시장 참여자를 기관 투자자까지 확대하고, 텐더 오퍼(불특정 다수로부터 장외에서 주식을 집단 매수하는 방식)나 옥션 방식으로 다수 개인과 기관의 거래할 수 있는 시장 등이 도입된다면 스타트업 창업자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참여하는 임직원과 투자자까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