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과 전쟁’을 선포했다.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문제인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협의회에서 최근 마약범죄가 급증한 배경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검수완박)을 꼽았다. 검찰의 마약 수사기능 축소로 낮아진 ‘위험비용’이 마약값에 반영돼 누구나 손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약값을 결정하는 요소는 위험비용뿐 아니다. 보다 중요한 요소는 시장 원리와 마약의 특성이다.
마약 유통과정도 일종의 ‘시장’이라고 본다면, 가격은 당연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위험비용이 낮아져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면 마약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초과공급이 발생하면 공급자들은 생산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낮춘다. 마약상들의 대응은 후자다. 최근 마약 시장은 그야말로 ‘풍년’이다. 중국, 멕시코 등을 중심으로 마약을 계속해서 찍어낸다.
다만, 정상적인 시장에서 이런 유통구조는 지속이 어렵다. 재고 떨이라면 몰라도, 제조원가도 못 챙길 가격에 상품을 계속 찍어내는 바보는 없다. 핵심은 중독성에 있다. 이미 마약에 중독된 이들에게 ‘가격’은 투약 지속 여부를 결정할 요소가 못 된다. 마약상들에겐 초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중독자를 만들어내면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강남 학원가의 ‘공짜’ 마약 음료 유통도 마약상들에겐 중독자 양산을 위한 일종의 판촉 행사다.
한국에서 필로폰 투약비용이 2만~3만 원, 펜타닐이 1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단 건 모순적으로 한국이 ‘아직’ 판촉이 필요한 마약 청정국임을 의미한다. 중독자가 극단적으로 적거나, 중독자의 상당수가 치료 가능한 초기 중독자란 뜻이다. 마약상들은 중독자가 어느 정도 확보돼도 한동안 저가로 마약을 공급할 것이다. 그러다 특정 시점에 가격을 대폭 올릴 것이다. 중독자들에겐 비싸도 팔릴 것이니.
아편전쟁 전후에도 그랬다. 1700년대 말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을 저가로 공급했다. 이후 아편값을 야금야금 올렸다. 검찰 수사권 축소로 마약값이 떨어져 유통이 늘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검찰의 수사권 축소로 마약범죄가 늘었으니, 수사권을 확대하면 마약범죄가 줄어들 것’이란 문제의식으론 해결이 어렵다. 강력한 처벌로 위험비용이 올라도 마약상들은 상당 기간 ‘저가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배출구가 필요해서다. 처벌로 위험비용을 높이는 것만으론 마약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사력을 강화한다면 그 역량을 공급 봉쇄에 집중해야 한다. 밀수 및 국내 생산 단속·처벌이 수단이다. 밀수·생산책에 대해선 한 장관 표현대로 ‘악’ 소리 나게 강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보호 차원에선 마약의 폐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가격을 떠나 마약 자체에 거부감이 생겨야 한다. 투약자들에겐 처벌보다 격리·재활을 통한 ‘완전한 치료’가 필요하다. 중독은 처벌로 치료되지 않는다. 물론, 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투약자를 찾아 완전히 치료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 거다. 그래도 해야 한다. 수요를 없애는 건 가장 확실한 답이다.
의료용 마약류에 대해선 접근성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처방 주기를 단축해 ‘대량 처방’을 막고, 의사의 ‘셀프 처방’을 금지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이미 국회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근절을 위한 법안도 발의돼 있다. 의료계 반발, 정부 무관심에 처리되지 않았을 뿐.
이럴 때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검·경이 수사에 전문성을 갖고 있듯 보건복지부(재활·치료), 식품의약품안전처(성분·제조·유통), 관세청(수입) 등 다른 관계부처들도 각자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 특정 전문성이나 이해관계에 치중되기보단, 각자 다른 전문성이 모여 시너지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