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기하·조합을 연결한 허준이 교수
필자는 변형을 임의대로 하지만 수학자는 체계적으로 다룬다. 그들은 점토 컵을 주물러 도넛을 만들고 둘은 위상적으로 동일하다고 우긴다. 위상수학은 형태를 무시하고 구멍의 개수만 따진다. 작년에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도형을 찌그러뜨리는 전문가다. 허 교수는 도형을 재배치하여 평생 하나도 풀기 어렵다는 미해결 수학문제를 10개 이상 풀었다. 대수를 기하로 변형하고 다시 조합으로 연결하였다. 어려운 용어들이지만 주사위로 쉽게 설명하자. 정육면체에 숫자를 표시한 주사위로 경우의 수를 얻으니 3개의 영역은 주사위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필자는 수식에 거부감이 없는 터라 그의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몇 걸음 못 가 전문적 용어는 접근을 막았고 결국 멀리 정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독자들도 엄밀한 증명보다 그의 철학을 반길 것이다. 그는 수학적 진리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수와 기하와 조합을 서로 연결하는 주사위보다 정교한 지하통로가 있다고 본다. 지하통로를 통하면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은 소수의 분포와 연결할 수도 있다.
변형이나 융합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동양 사상은 모든 것을 인연으로 간주했다. 인연으로 맺어지고 인연으로 헤어진다고 말한다. 인연 외에 고유한 법칙은 없으니 둥글둥글한 원이 진리라고 우긴다. 그들에겐 원이 지하통로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원을 진리로 보았고 천구도 완전한 원이라는 인식이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행성이 타원 궤도를 돈다는 케플러의 발견은 서양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독일의 천재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원 대신 점이라는 모나드를 도입하여 융합을 이어가고자 했다. 모나드에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조화롭다. 자신의 늦잠도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과 연계된다. 전지전능한 신이 모나드를 창조했고 만물을 운행하고 있으니 모든 현상이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리스본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자 루소는 이것도 전지전능한 신의 조화냐며 라이프니츠를 비꼬았다. 그래도 세상은 법칙대로 움직이므로 과학은 라이프니츠의 손을 들어주었다.
카오스 이론…우연인가 필연인가
반전은 19세기 말에 일어났다. 과학은 우연을 유발하는 인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오차를 지닌 측정과 다양하고 미세한 환경인자들이 불확실성을 야기했다. 베이징의 나비질이 태풍의 경로를 바꾼다는 카오스 이론이다. 결국 자연현상은 필연의 법칙이 지배하지만 불확실한 초기 조건 탓에 우연의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확실성은 증폭되니 단기 예측은 필연이 우세하고 장기 예측은 우연이 우세하다.
원도 틀렸고 모나드도 틀렸지만 허준이 교수의 지하통로는 사실일까? 수학의 현상은 과학 현상과 조금 다르다. 수학에서는 측정이 필요 없으니 필연적 현상만 나타난다. 따라서 모든 수학적 명제를 연결하는 지하통로가 있다는 허 교수를 반박하기는 어렵다.
사실 지하통로는 대부분 수학자가 잡으려는 무지개였다. 가까이 가면 무지개는 저 멀리 가버리니 허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학의 무지개는 허상이 아니라 희망이다. 허상을 좇으면 기왓장을 들고 오지만 희망을 좇으면 견고한 수학의 세계가 얻어진다. 1, 2, 3, 4라는 수의 개념과 2차 방정식도 무지개를 좇다 얻은 귀중한 결실이다.
우리 주변에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가 지하통로로 내려가는 가장 짧은 계단일 수 있다. 회피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즐기면 다음 필즈상은 당신의 몫일 수도 있다. 비닐하우스의 CCTV 장착 문제를 한 달 이상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두 부품을 결합하기도 했고 막힐 때는 용접기를 구매하여 평평한 판을 붙일 생각까지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절차를 생각하느라 필자는 기계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얻었다. 드디어 방법이 떠올랐고 부품을 구매하고 조립하였다. 성공했지만 칼럼의 분량이 한정되어 있어 설명드릴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