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반도체 업황 최악…글로벌 PC 출하량 29% 감소
‘바닥 찍고 반등’ 기대 고조
수요 회복 지연·G2 대립은 불안 요소
1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주요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달 약 9% 오르면서,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올해 들어 상승 폭은 23.5%에 달했다.
반도체 주식의 랠리는 실적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도체 산업은 현재 역대급 한파에 시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투자자들의 손은 빨라지고 있다. 업황이 나쁠수록 바닥을 찍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인 만큼 저점을 찍고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산업은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리서치 업체 IDC에 따르면 1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잠정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95.75% 급감했다. 삼성은 급기야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기조를 깨고,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 감산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은 이 최악의 시기를 ‘매수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감산 결정은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불을 붙였고, 마이크론 등 다른 기업 주가까지 끌어올렸다.
최악의 불황에 베팅하는 전략은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에 근거한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3~4년 주기로 찾아오는 특징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실리콘 사이클’이라 부른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불황이 끝나갈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의 오시덴 마사후미 리서치 대표는 “반도체주는 재고 조정의 시작과 함께 반전한다”며 “주가 상승과 시황 저점의 시차는 대략 6~9개월”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반도체 산업이 ‘상저하고’의 흐름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인베스코 영국법인의 글로벌 주식 운용 책임자인 스티븐 아네스는 지난해 가을 “반년 이내에 반도체 사이클은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경기 후퇴로 인한 수요 회복 지연과 미·중 대립 등이 이러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시노 마사히코 도카이도쿄조사센터 선임 애널리스트는 “주식 투자자들은 반도체 산업이 바닥을 찍은 뒤에도 개선되지 않을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는 PC,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 최종제품의 생산 활동에 선행해 ‘경기 선행지표’로도 불린다. 경기 악화로 최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되면, 반도체 업황 회복 역시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갈수록 심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 장치 등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중국은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양측의 대립이 계속되면 업황이나 실적 개선이 더뎌질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