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 목적으로 발행된 가상화폐를 상장하는 대가로 수십억 원의 뒷돈을 주고받은 조직적 범죄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검찰은 ‘강남 납치‧강도살인’ 사건의 범행동기로 여겨지는 일명 P코인(퓨리에버)도 무리하게 상장된 뒤 시세조종 행위가 맞물려 투자 피해를 유발한 대표 사례로 지목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이승형 부장검사)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은 최근 코인원 상장 총괄 이사였던 전모 씨와 실무역인 상장팀장 김모 씨, 브로커 고모‧황모 씨를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수사팀은 지난 1월부터 넉 달간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 곳인 코인원의 상장 리베이트 비리를 수사해왔다.
검찰에 따르면 전 씨는 2020년부터 2년 8개월간 브로커들로부터 총 20억여 원, 김 씨는 2년 5개월간 10억4000여만 원을 코인 상장 대가로 수수하고(배임수재), 처음부터 시세조종이 예정된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시킨 혐의(업무방해)를 받는다. 브로커 고 씨와 황 씨는 배임증재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김 씨는 코인을 차명계정으로 현금화해 한남동 빌라를 구입하는 데 쓰고, 황 씨도 차명계정으로 세탁을 한 코인을 공여해 범죄수익은닉죄 혐의도 받고 있다.
전 씨와 고 씨는 이미 7일 구속 기소됐고, 김 씨와 황 씨는 전날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번 사태로 △거래소 임직원과 상장브로커간 유착 △ 코인 시세조작(MM·Market Making) △발행재단·상장브로커·거래소 임직원의 불법 이익 공유구조 △코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피해를 포함해 이른바 ‘김치코인’의 구조적 비리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김치코인은 국내 또는 내국인이 발행한 코인으로 대부분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을 말한다.
검찰은 코인 거래시장에 코인 다단계업자, 상장 브로커뿐만 아니라 거래량을 부풀리고 목표가격까지 인위적으로 코인 가격을 조작하는 MM 업자 등 불법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상장브로커 및 MM 업체와 결탁해 시세조작으로 부정한 이익을 취득한 코인 시장조작 세력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취득한 범죄수익을 추적해 환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같이 가상자산 거래소의 코인 상장청탁 문제는 심각하다. 검찰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유통 가상자산 총액 중 62%가 국내 거래소를 중심으로 규모가 영세한 김치코인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건전성, 사업성에 대한 심사를 소홀히 할 경우 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퓨리에버(PURE) 코인이 2차례에 걸쳐 시세조종 작업이 있을 것으로 의심해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배경이 된 김치코인인 P코인의 경우 발행재단이 영세하고 부채비율이 높았지만 거래소에 단독 상장됐다”며 “상장 직후 MM을 통한 시세조작 행위로 다수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했고 결국 살인이라는 비극적 사건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퓨리에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는 지난달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 주범 이경우(35‧구속)의 윗선으로 의심 받는 유모 씨·황모 씨 부부가 피해자 A 씨와 초기 투자자를 모집한 암호화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유 씨 부부와 A 씨 간 사이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