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은 미래에 경제적 효익이 기업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는 자원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서 미래에 돈을 벌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면 자산으로 부르는 것이다. 회사는 상품과 원재료를 사오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한다.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재료비 외에 인건비, 경비가 투입된다. 사실 재무상태표에 표시되는 재고자산은 이렇게 비용 덩어리인 셈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재고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처리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입한 만큼 그 금액 이상으로 돈을 벌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산이 될 자격이 없다.
회사는 제품 생산을 위해 지출한 원재료비, 인건비, 경비 등을 재고자산으로 회계처리를 한 후 보관하고 있다가 판매가 이루어지면 매출원가로 비용처리 한다. 이 매출원가에 마진을 붙인 것을 가리켜 우리는 매출액이라고 한다. 즉 기업이 생산 후 보관 중이면 재고자산, 판매가 이루어지면 매출원가이다. 기업들의 재고가 적체된다는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재고가 쌓여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면 재고자산 잔액과 매출원가를 비교해보면 된다.
한창 잘나가던 K 반도체가 위기론에 봉착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재고자산 적체이다. SK하이닉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2022년 말 재고자산 보유액은 17조 원으로 2021년 말 9조2000억 원 대비 약 85%나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판매가 늘었으니 재고도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나 의외로 2022년 매출액은 44조6000억 원으로 2021년 대비 4% 성장에 그쳤다. 2022년에 매출원가가 28조 원 정도 되는데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평균 매출원가가 2조3000억 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유한 재고자산이 17조 원이니까 약 7.3개월 치 재고를 가진 셈이다. 2021년 말에 4.6개월 치 재고를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많이 쌓이긴 했다.
문제는 D램 가격의 하락과 수요 부진으로 인해 2023년의 판매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여러 증권사가 전망한 2023년 SK하이닉스 실적 전망치 평균을 보면 매출액은 2022년보다 47% 감소한 24조 원으로 예상했고 영업적자는 무려 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품을 팔아봤자 손해가 날 것이라는 얘기이다.
창고에 쌓인 재고가 더는 안 팔리거나 손해를 보고 팔게 되는 상황이 되면 회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산원가 이상으로 팔아서 기업에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재고를 자산으로 인정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으니 재고를 자산으로 잡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안 팔리거나 원가 이하의 판매가 예상되는 재고자산에 대하여 즉시 손실로 처리한다. 이를 가리켜 재고자산평가손실이라고 하며 매출원가에 가산한다.
SK하이닉스의 2022년 손익계산서를 보면 원가 기준으로 판매한 28조 원과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처리한 1조 원을 합쳐 약 29조 원을 매출원가로 비용 처리했다. 다른 여러 기업도 2022년 결산을 하면서 재고자산평가손실 처리를 많이 했다. 삼성전자는 4조4000억 원을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처리했는데 전년도 보다 2조5000억 원 증가한 것이고 LG전자도 2021년 대비 2배 가까이 되는 3417억 원을 손실로 떨어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은 더욱 수요 예측을 정교화해야 하고 생산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재고관리에 완벽히 해야 한다.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재고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숫자상으로 검증해봐야 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대로 월 매출원가로 연말에 보유한 재고자산 금액이 몇 달 치 정도 되고 이는 과거 또는 동종업계 대비 양호한 수준인지를 검토해보면 기업의 재고자산이 잘 팔리는지, 안 팔려서 창고에 쌓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생산을 위해 현금이 다 투입된 상황에서 재고자산 회전율이 떨어지면 기업의 현금흐름에 큰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요즘 같은 경기 둔화기에는 필수적으로 분석해봐야 하는 계정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