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더이상 ‘노후의 지갑’만이 아니다. 연금 수령액 못지 않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책임이 크다. 작년에 조금 줄긴 했지만 어찌 됐든 1000조 원에 육박한 자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8년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당시 ‘기업 벌주기’, ‘무소불위 권력자 탄생’, ‘기업 임원 처벌 프로젝트’ 등 질타가 잇따랐다. 2017~2018년 당시에도 기금 규모는 620조~630조 원대였다. 600조 원이란 ‘실탄’을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 흔들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후 5년이 흐른 현재 그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이 작년 말 취임한 직후 KT를 겨냥해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밝힌 것이 신호탄이었다. 서 본부장의 발언을 두고 당시 수책위 일부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연금 기금이사가 특정 기업을 언급한 점, CEO 선임 절차에 대해 거론한 점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의 개별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수책위에서 다루는 만큼 서 본부장의 발언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탈선’한 서 본부장이 본부 내에 다시 전문위원회(건강한 지배구조 개선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는 해당 위원회에 대해 “본부 내 자문기구로만 알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본부에서 결정한 사안이라 복지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책위는 독립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런 수책위는 기금위 산하에 있는 전문위원회다. 기금위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 맡는다. 기금위는 기금운용지침 등을 수립하고 수탁자 책임과 관련한 중요 정책을 결정한다. 본부 내 자문기구가 기금위, 수책위에 미칠 영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문가 조직을 모른 척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동을 놓고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국민연금 고갈될까 걱정되는데 무슨 의결권이냐, 수익률이나 올리라는 얘기가 다반사다. 오죽하면 대통령도 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말했을까. 최근 국민연금 이사장은 갑작스러운 임원 인사로 ‘특단의 조치’ 주문에 화답했다.
수익률 질타 속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위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들은 의결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결권은 외부의 개입 없는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을 후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고, 결국 수익률로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단타 거래만 하는 것이 맞냐는 반문이다.
국민연금 내 전문가들의 모임, 좋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기금 의결권에 대한 가치관이다. 국민연금 의결권의 의미와 수탁자책임활동의 독립성을 추구할 수 있는 운용관을 갖춰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취득자 수는 1만328명이다. 너도나도 박사인 전문가 시대다. 그러나 본질은 외면한 채 거수기 역할만 한다면 그 전문가 기구는 무용지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