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금개혁, 마크롱 반만 닮아도 박수받는다

입력 2023-03-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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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어제 국내 연금개혁 시급성을 강조하는 자료를 내고 “개혁이 미뤄질수록 미래세대 부담이 커져 세대 간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 분명한데, 용기 있는 결단 및 강한 추진력을 보여준 프랑스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은 시간만 끌고 있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을 배워 우리 사회도 더 늦기 전에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경연은 올해 정부가 국민연금 등 8대 사회보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만 20조 원을 돌파했다며 “어떤 식으로라도 개혁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선 뒤 2055년 기금이 소진된다. 최근 나온 보건복지부 추계 결과가 이렇다. 5년 전인 2018년 전망과 비교하면 적자 시점은 1년이, 기금소진 시점은 2년이 앞당겨졌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 연금투자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다면 결국 해결책은 보험료율을 올려 가입자 부담을 높이거나 수급연령 상향이나 급여 감액으로 적게 가져가는 것뿐이다. 어느 선택도 쉽지 않다. 개혁 속도를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경연은 이 답답한 현실을 환기하면서 마크롱을 거명했다.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실제 우리 책임자들이 마크롱의 반만 닮아도 연금개혁 작업이 저토록 엉망으로 뒤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는 애초에 올해 4월까지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는 ‘개혁 초안’ 대신 그간의 갑론을박을 정리한 경과보고서만 29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여야 또한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이나 저울질하다 손을 터는 모습이다. 최소한의 책임감도, 절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래서 늦지 않게 개혁이 될지 의문이고,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프랑스는 연금개혁안 발표 이후 반대여론이 70%를 넘었고, 마크롱 지지율이 20%대까지 곤두박질쳤으며, 250여 개 지역에서 100만 명대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한창이다. 보르도 시청사가 불타오르기도 했다. 사회적 반발과 정치적 손실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도 마크롱은 “단기적인 여론조사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택하겠다”라면서 정면 돌파를 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학적 사정은 프랑스보다 나을 게 없다. 한국은 2020년부터 이미 인구 감소가 시작됐지만 프랑스는 2040년까지 인구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개혁이 시급한 쪽은 한국인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엔 ‘국익을 택하겠다’라는 자세로 온몸을 던져 개혁에 나서는 국가 지도자나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국가가 됐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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