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국회의장 개정 검찰청법‧형소법 가결선포 행위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선 헌재, 전부 ‘기각’…재판관 5대 4
법무부‧검찰, 헌법소송 요건 못 갖춰…본안 판단 없이 각하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과정에서 소수당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수완박’ 법안 자체를 무효로 볼 정도의 헌법을 위반한 사안은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 등 검찰 측이 권한침해 및 그 행위의 무효 확인을 구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는 아예 본안 판단 없이 헌법소송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 ‘부적법’ 각하됐다.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지난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1개월 만이다.
헌재는 23일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2022헌라2) 중 ‘권한침해 확인 청구’를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인용했다.
재판부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검수완박’법 입법 과정에서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이 ‘위장 탈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헌재는 국민의힘이 이 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가운데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전부 기각했다.
다수 의견은 “청구인들은 모두 본회의에 출석해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실제 출석해 개정 법률안 및 수정안에 대한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했다”며 “국회의장의 가결선포 행위가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 4명은 법사위원장‧국회의장에 대한 권한쟁의를 모두 기각해야 한다고 봤지만,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등 4명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이미선 재판관은 법사위원장의 회의 진행으로 인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권한 침해는 인정했지만 국회의장의 개정 법률안 가결선포 행위는 문제없다고 봤다.
법사위원장의 가결선포 행위에 대한 무효 확인 청구도 5대 4로 기각됐다.
이번 권한쟁의 심판의 쟁점은 △소수당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는지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한 입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서 헌재는 소수당 국회의원의 ‘권한 침해’는 확인되나,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한 입법 전체를 무효로 돌릴 만큼 헌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날 함께 선고된 법무부 장관 등과 국회 간의 ‘검사의 수사권 축소 등에 관한 권한쟁의 사건’(2022헌라4)에서 헌재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기각 또는 인용은 본안 판단을 내렸을 경우에 하는 판단 결과다. 반면 각하란 본안 판단에 이르기 전에 헌법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내리는 판단이다.
헌재는 “국회가 2022년 5월 9일 법률 제18861호로 검찰청법을 개정한 행위 및 같은 날 법률 제18862호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한 행위에 대해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권한침해 및 그 행위의 무효 확인을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각하했다”고 판시했다.
유남석 소장을 포함해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 5명은 법무부 장관의 경우 “청구인 적격이 없다”는 이유에서, 검사들의 경우에는 “권한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들이 법률개정 행위에 무효 확인을 구한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재판부는 법무부 장관의 청구와 관련 “이 사건 법률개정 행위는 검사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으므로, 수사권‧소추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법무부 장관은 청구인 적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검사들의 청구에 관해서는 “이 사건 법률개정 행위는 국회가 입법사항인 수사권 및 소추권의 일부를 행정부에 속하는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하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이라며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헌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권 조정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수사기관 간의 수사권 조정은 국회의 폭넓은 입법재량이 인정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각하 판단은 헌재가 수사권 조정에 있어 국민들로부터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의 ‘광범위한 입법재량 영역’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선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4인의 반대의견이 있다. 반대의견은 법무부 장관과 검사들 각각의 권한침해를 인정해서 인용해야 한다고 봤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최종 형태로 평가되는 ‘검수완박’은 지난해 정권교체기를 달군 이슈다.
당시 검찰은 2021년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와 대형참사)에 한해서는 직접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은 6대 범죄 수사권까지 모두 없애는 내용의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했다.
작년 4월 15일 발의된 개정안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다 정권교체 직전인 4월 30일(검찰청법)과 5월 3일(형사소송법)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장 탈당 등 ‘꼼수 입법’ 논란, 검찰의 집단 반발, 법조계와 학계의 개정안 비판 등 우여곡절을 거쳐 ‘부패범죄‧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는 검찰의 수사 범위에 남겨졌다.
이날 권한쟁의 심판에서 법률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결정까지 내려질 수 있다는 예측이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헌재는 수사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권 조정에 관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광범위한 입법 재량을 보일 여지가 폭넓게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법부인 헌재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 판단을 존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