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자녀 상속포기하면 손주 아닌 배우자만 상속"…기존 판례 뒤집어

입력 2023-03-23 15:26 수정 2023-03-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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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대법원 제공)

자녀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인이 되고 손자녀는 공동상속인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하고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망인의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기존 민법과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 소송에서 11대 2의 결과로 승계집행문 부여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하고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한 채권자는 A 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11년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A 씨가 2015년 사망하며 상황이 복잡해졌다. A 씨의 사망으로 A 씨의 아내는 ‘상속한정승인’을 했고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를 했다.

상속을 포기하면 망인의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되지만, 그 재산과 채무가 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계속 이전된다. 한정승인은 상속인의 재산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한다는 조건으로 상속을 수락하는 것이다. 상속포기와 달리 그 재산과 채무가 가족들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이후 이 채권자는 A 씨의 상속인인 배우자와 손자녀 4명을 상대로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다. A 씨의 채무가 그의 배우자와 손자녀들에게 공동상속됐다고 본 것이다.

A 씨의 손자녀들은 승계집행문 부여가 위법하다는 취지로 소를 제기했다. 망인의 배우자만 ‘단독 1순위’ 상속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만 승계집행문을 부여해야 하는데, 망인의 손자녀들까지 승계인으로 인정해 승계집행문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원심은 승계집행문 부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망인의 손자녀들도 망인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라는 취지로 선고했다.

원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2015년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 상속인이 되고, 이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행 민법은 상속순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1042조는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그 다음 순위인 손자녀들이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해석될 수 있고, 1043조는 ‘상속을 포기한 자녀들의 상속분이 배우자에게 귀속돼 결국 배우자가 단독 상속을 한다’고 풀이될 수 있어 상충되는 부분이다.

다수 의견인 대법원 11명의 재판관은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있더라도 배우자만 단독상속이 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민법은 배우자 상속과 혈족 상속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상속과 관련한 배우자의 지위를 다른 상속인들과 똑같이 취급해 왔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사례에서도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됐더라도 이후 자녀와 손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며 결과적으로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는 사례가 많다는 부분 역시 지적됐다. 재판부는 이같은 실무를 고려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2명의 재판관은 기존의 판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상속 순서에 있어서 손자녀는 자녀보다 후순위이고 직계존속도 직계비속보다 후순위이지만 이들 모두 배우자와 순위는 같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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