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말하는 대로

입력 2023-03-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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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엔 자유…지금은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계속되는 금리 인상과 고물가에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1~2년과 비교해 장바구니가 홀쭉해 졌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1%(전년대비)로, 1998년 이후 24년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물가도 상승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외식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7.7% 오르며, 1992년(10.3%) 이후 3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그런데 소득은 제자리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12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의하면 11월 전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58만5000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4.5% 늘었다. 하지만 임금상승률이 같은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5.0%)에 미치지 못해 실질 임금 증가율은 4월 이후 8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물가 잡기에 힘을 쏟고 있다. 가스·전기료 인상 부담에 부랴부랴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대책을 내놨고, 인상 폭과 속도 조절에 나섰다. 주요 식품·주류 업계의 가격 인상엔 제동을 걸었다. 주류 가격 인상 움직임에 지난 1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안정은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각계의 협조도 필요하다”며 인상 자제 신호를 보냈다. 이후 기재부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비공개 간담회, 실태조사 착수, 업계 수익상황 모니터링 등을 통해 업계를 압박했다.

여기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식품산업협회 간담회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물가안정을 위해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달 6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또 한번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결국 주요 식품·주류업체는 가격 동결, 인상 철회 등을 발표하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가격 통제에 성공한 셈이다. 업계는 속내가 불편하다. 그러나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자칫 탈이 날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눈치를 안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봐 결국 인상을 접었다”고 했다. 업계는 민간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되묻는다.

지난해 5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했다. 이어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며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범 11개월 정부의 정책 결정은 ‘자유’와 거리가 멀다. 취임사에 언급됐던 합리주의와 지성주의, 공정한 규칙도 찾기 힘들다. 물가 잡기에 급급해 ‘요청’이라는 형식을 빌어 기업의 자유를 해치는 우를 범했다. 금융과 통신에 대해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공제적 성격이 강하다. 물가안정 고통분담을 위한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지만 업계는 정부 눈치를 보며 받아들인다.

다양한 의견 수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는 정부 중요 정책 결정의 기본이다.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했다.

국민들이 소망하는 바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정부가 원하는 대로의 정책 결정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바라는 바 대로의 정책 결정과 실천이 우선이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한 정부라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 지성주의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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