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이자 부담에 가계 빚을 중도에 갚거나 조건에 맞춰 저리(低利)의 정책 대출로 갈아타는 차주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주요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9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전세자금대출도 2조5000억 원이나 빠졌다. ‘돈 잔치’ 비난 여론에 은행들이 부랴부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섰지만 실제 체감을 못하는 차주들이 대다수인 데다 향후 미국과 한국의 금리 인상 시그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에 800조 원 규모의 주담대가 연내 시행되면 ‘쩐의 대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월 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은 5조4000억 원 감소했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9월 1조2000억 원 감소로 전환한 뒤 7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 -0.5%, 올해 1월 -1.0%, 2월 -1.3%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담대(잔액 798조6000억 원)는 3000억 원 줄었다. 은행 주담대가 전월보다 감소한 것은 2014년 1월(-3000억 원) 이후 9년1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주담대 가운데 전세자금 대출이 2조5000억 원이나 급감했다. 2016년 1월 해당 통계 편제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기타대출은 신용대출이 2조5000억 원 감소하는 등 총 4조8000억 원 줄었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디스인플레이션 발언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금융당국의 은행 대출금리 인하 압박 등이 겹치면서 차주들에게 유리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7일(현지시간)부터 파월 의장이 최종 금리 수준과 기준금리 인상 폭을 모두 높일 수 있다는 매파적인 발언을 이틀 연속 내놔 미국이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기준금리가 현재 3.5% 수준에서 3.75%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에 따라 고금리에 치인 차주들의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부채 상환러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A은행 창구에는 금리에 대한 불안요소가 커지면서 대환대출에 대한 문의 전화가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과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불안감이 겹치면서 창구에 대환대출 문의가 평소대비 25% 늘었다”면서 “상대적으로 대환대출 여부 확인이 어려운 주담대, 전세자금 대출 위주의 문의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전일 기준 출시 한 달 만에 신청금액 17조5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절반이 기존대출을 상환하고 갈아탔다.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금액 중 자금 용도는 기존대출 상환이 54.9%(4만2000건)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누구나 상관없이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이면서 대출 감소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대환대출 플랫폼에 주담대가 들어갈 경우 더 싼 이자의 대출로 갈아타려는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