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이긴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연패에 몰렸던 정당이 갑자기 3연승을 달렸으니 유권자의 마음을 훔쳤다는 생각도 할 법하다. 그들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꽤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선거를 ‘내부총질 당 대표’ 때문에 겨우 이겼다는 생각이다. 이제 ‘싸가지 없는’ 이준석 전 대표를 담가버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앞에 나서는 총선이니 과반의석쯤은 거뜬하고, 사법리스크에 갇힌 야당 대표가 버티기에 들어간다면 200석도 노려볼 만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일 터이다. 윤석열 대 이재명 리턴매치, 짜릿하지 않은가.
너튜브에 넘쳐나는 가짜뉴스에 중독된 일부 극우성향 여권인사들이나 유권자들은 그렇다 치자.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 쪽에서는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르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정말 모를까. 흥미로운 현상을 하나 공개하자면, 용산 주변에서는 “이준석 없는 선거는 필패”라는 이야기가 들린다는 점이다. 주로 내년 총선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대통령 참모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모진 조리돌림으로 내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준석을 찾는단 말인가 싶겠지만, 여기에는 다 사정이 있다.
대선이 끝나면 승리한 쪽에서는 ‘대통령 선거 백서’라는 책을 낸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캠프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지와 함께 적어 놓은 것으로, 일종의 승전보이자 공신록이다. 18대 대선 백서는 2013년 3월 새누리당이 ‘희망의 국민행복 시대를 열다’라는 이름으로, 19대 대선 백서는 2017년 9월 더불어민주당이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발간 일을 보면 알 수 있듯 선거백서는 보통 대선이 끝난 지 수개월 안에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20대 대선 백서는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준석 전 대표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과 지선을 다 이겼는데 백서도 안 썼다. 선거 자체를 곱씹으면서 분석해야 다음 총선 전략을 세울 수 있는데, 분석하는 게 두려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려운 이유로는 “여론조사를 보면 이준석이 윤석열보다 대선 기여도가 높다고 나온다. 그걸 분석해 공식 문서로 남기는 순간 모순이 되니 분석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의 말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용산의 윤 대통령 보좌진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누구 덕에 자신들이 ‘대통령의 참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지,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누구를 앞에 세워야 표를 모을 수 있는지. 아마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준석 전 대표를 다음 총선에도 써먹을 셈일 터이다. 내년 1월까지 당원권이 정지됐으니 공천은 물 건너가지 않았냐고 묻는 맑고 순수한 영혼들을 위해 잠시 설명드리자면, 국민의힘은 2017년 당원권 정지 상태였던 홍준표 현 대구시장의 징계를 무효로 선언하고 대통령 선거에 내보내는 결단력을 가진 정당이다.
돗자리 편 김에 천기누설을 하나 보태자면, 이준석 전 대표는 ‘마삼중(마이너스 3선 중진)’ 신화의 발생지인 서울 노원병에 또 출마(자의건 타의건)하지 않을까 싶다. 윤핵관들에게 ‘이준석 노원병 출마’는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까지 씌울 수 있는 묘수다. 우선 이준석을 품었다는 대인배 놀이가 가능하고, 이준석을 지지하는 젊은층 표를 모을 수 있는데, 정작 이준석은 또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하는 트리플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총선에서 패한다면? “이준석 때문에 졌다”는 필살기를 소환해 그를 드럼통에 넣을 수 있다. 대통령은 ‘엄정한 선거중립’ 모드였을 테니 선거참패와는 무관하다. 이러니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버릴 수 있겠나. 이미 김기현 당 대표 후보는 내년 총선에서 이준석 전 대표 등에게 역할을 줄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언론 질문에 “필요하면 선거대책위원장, 지역 선대위원장을 맡기고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답한 상태다.
간 보지 말고 그냥 이준석과 함께하고 싶다고 얼른 고백하자. 어차피 곧 썸탈 거면서 수줍은 척하기는. w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