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대책을 놓고 노·정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회계자료 등 미제출을 이유로 한 국고지원·세제혜택 제한과 과태료 부과에 법적 근거가 모호해 노동계의 반발이 크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노조에 대한 회계자료 등 제출 요구의 근거로 삼는 건 법률이 아닌 판례(2012헌바116) 해석이다. 고용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7조에 따라 행정관청이 보고를 요구할 수 있는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에 노조법 제14조에 따라 비치·보전할 의무가 있는 장부와 서류도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입법조사처는 “노조법 제27조의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에 제14조의 ‘재정장부와 서류’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87호를 그 근거로 노조 회계장부를 조합원이 아닌 외부에 유출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결국, 회계자료 등 비치·보전·열람을 요구할 수 있는 주체는 조합원에 제한된단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회계자료 등 미제출 노조에 대한 국고지원금 삭감과 조합원 세액공제 폐지, 과태료 부과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조합원에 대한 의무’ 이행 여부와 무관하게 법적으로 권한이 모호한 ‘정부 요구’ 불응을 이유로 한 불이익이란 점에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장부·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이행한 노조가 정부에 자료 제출만 거부했을 때 발생한다. 노조법 제14조에 따른 과태료는 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위반했을 때 부과 가능하다. 의무 이행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는 건 법률상 과태료 부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재 상황은 2016년 ‘양대 지침’을 계기로 한 노·사·정 파행과 닮았다. 당시 고용부는 노동개혁 일환으로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와 ‘근로자 과반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을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운영 지침’을 추진했다. 모두 판례 해석을 근거로 한 결정이었다. 근로기준법상 일반해고와 사측의 일방적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은 금지되나, 고용부는 몇몇 특수한 판례를 내세워 일반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는 1998년 외환위기 대타협 이후 17년 만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참여로 2015년 이뤄졌던 ‘9·15 노·사·정 대타협’ 폐기였다.
노동계는 정부 요구 불응을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에 대한 회계자료 등 미제출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받는 경우, 행정소송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