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0%로 동결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일곱 차례 연속 인상 행진을 멈춘 것이다. 인플레 둔화속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수준, 부동산 경기 등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금리인상 파급영향 등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이창용 한은 총재의 설명이다.
정부는 앞서 그린북(최근경제동향)을 통해 경기둔화를 공식 인정했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1.7%에서 어제 1.6%로 수정됐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도 역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다. 경제 동향이 불안하다. 기준금리 동결은 이런 변수들을 감안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이 총재는 어제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를 봐야 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어제 결정은 ‘일단 멈춤’에 불과하며, 금리 인상 사이클이 언제 종료될지는 미지수라는 뜻이다.
1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5.2%를 기록해 석 달 만에 상승폭을 키웠다. 2월 기대인플레도 4.0%를 기록해 다시 4%대로 올라섰다. 한은은 어제 올해 CPI 전망치를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춘 3.5%로 제시했지만, 근원인플레이션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물가는 2.9%에서 3.0%로 오히려 높였다. 물가안정 책무를 감안하면, 한은의 어깨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생생한 지표들이다. 어제 동결 결정으로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졌을 것이다. Fed를 19년간 이끈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중앙은행이 할 일은 파티가 막 시작될 때 펀치볼을 가져가 버리는 일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파티의 흥을 깨고 찬물을 끼얹는 것은 다 마다할 악역이지만 중앙은행이 떠맡아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미 연준발 태풍이 곧 불게 된다. 어제 동결로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폭은 1.25%포인트로 유지됐다. 이것만으로도 역대 최대치(1.50%p)에 가까운데 미 연준은 3월 중 금리를 더 올릴 전망이다. 적어도 베이비스텝(0.25%p 인상)을 밟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올해 최종 기준금리 상한이 기존 관측치를 웃도는 5.50%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어제 우리 기준금리가 올 연말 최고 4.0%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설득력이 없지 않다. 안개가 곧 걷힐지도 모른다. 변화를 직시하고 기민하게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