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우려를 표했다. 사용자 범위가 모호하게 확대되는 등 위헌 소지가 있고, 적법한 파업의 범위가 확대돼 '파업 만능주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헌법·민법 원칙에 위배되고, 노사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파업에 대한 합법적인 범위를 넓히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2014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 당시 노조가 사측에 47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시민단체가 노란 봉투에 성금을 모아준 데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정부는 우선 사용자의 범위를 넓힌 노란봉투법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사용자 범위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도 포함해 그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함으로써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노란 봉투법은) 사용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아 원청은 자신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인지, 단체교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을 예측할 수 없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쟁의와 적법한 파업의 범위가 확대돼 노사갈등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금까지는 미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의 쟁의만 허용돼왔지만, 개정안이 발표되면 현재 근로조건을 이유로도 쟁의할 수 있다.
이정식 장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동쟁의 및 적법한 파업의 범위가 사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분까지 확대돼 파업 만능주의가 우려된다"며 "임금체불, 해고자 복직 등의 권리분쟁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의 법률적 판단이 아닌 노조가 파업 등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돼 노사갈등 비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것도 문제 삼았다. 추 부총리는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의무자별로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신원보증인의 배상책임을 면제시킨다"며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 책임 원칙을 훼손하고, 피해자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마련에 나섰다. 최근 투자 확대에 힘을 싣는 중이라 노란봉투법이 기업에 미칠 여러 영향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노사관계가 상당히 불안해지고 파업을 조장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제가 어려워 어느 때보다 노사화합이 중요하고 단합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게 더 중요한 때"라고 우려했다. 이어 "노사관계가 상당히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건 우리 경제나 기업에 상당히 좋지 않은 움직임"이라며 "이런 법이 자꾸 나오면 국내 투자가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개정안은 21일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할 경우 대통령실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공식 석상에서 우려를 표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도 17일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관심이 있는 법안과 민생법안이 한 정치세력이나 정당에 의해 여야 합의 없이 일방 처리된다면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실 것"이라며 재차 거부권 행사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