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회계투명성, 노조라고 예외 아니다

입력 2023-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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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노동조합에 회계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대상 노조의 70%가 제출했고, 이 중에서 30%만 제대로 냈고 40% 정도는 표지만 냈다”고 했다. 어제 언급은 다소 복잡하지만, 의미는 간명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을 비롯한 거대 노조들이 정부 압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회계자료 제출 요구에 등을 돌린 것이다. 고용부는 앞서 1일 노조의 ‘깜깜이’ 회계 논란과 관련해 15일까지 증빙자료 제출을 하도록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노조 334곳에 공문을 발송했다.

노동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교육개혁과 함께 3대 개혁으로 꼽힌다. 정부는 노조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공정하고 안정적인 노동시장 구축을 위한 중요 과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제 나온 자료를 들여다보면 걱정만 앞선다. 고용부 요구에 응해 제대로 회계자료를 제출한 조합은 120곳으로 36.7%에 그쳤다. 이 장관이 말한 ‘30%’보다는 많지만 3분의 2에 가까운 조합이 정부 요구를 전면 묵살하거나 사실상 회피한 결과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래서야 어찌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확보되고 노동개혁이 가능해질지 모를 국면이다.

양대 노총으로 통하는 한노총과 민노총은 2021년 기준으로 83.5%의 조합원을 확보한 거대 권력이다. 예산 규모도 각각 1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 금고에는 수많은 조합원 회비가 모일 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등의 보조금도 쌓인다. 회계 투명성 확보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국제적 관행도 그렇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일본은 회계감사자로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 보유자를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도 일정 기준 이상 규모의 노조에 대해 회계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독일 또한 회계감사팀을 복수로 꾸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중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투명성 제고 요구에 응하기보다 법적 공방과 정면충돌을 원하는 모양이다. 한노총은 어제 논평을 통해 ‘부당한 행정 개입’을 탓했다. 민노총도 앞서 구체적 자료 제공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회계 자료의 외부 공개를 꺼리는 노조를 응원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노동계는 정부에 반발하기보다 노조 활동의 신뢰성을 높이는 첫 단추를 어찌 끼울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도 이번 기회에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 이 장관은 어제 500만 원 과태료 부과 등의 페널티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회계 투명성이 확보된다고 믿는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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