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인텔리 여성인 씨민은 딸을 잘 키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길 원하지만 남편 나데르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버티고 결국 둘은 별거에 들어간다. 나데르는 아버지를 돌볼 간병인 라지에를 고용하지만 그녀가 아버지를 방치하자 화가 나서 그녀를 해고한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임신했던 라지에의 뱃속 아기가 유산이 되고 화가 난 라지에의 남편이 나데르를 고소하면서 일은 일파만파, 재판에서 진실 공방이 이어진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사건으로 시작되어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되지만 영화는 내내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부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외동딸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다. 주위의 인물들도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기 위해 기존 주장을 철회하기도 한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모두가 얽히고설킨 관계를 만들어낸다. 결국 나데르의 아버지는 죽지만 남아있는 가족, 이웃들 간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영화는 이란의 풍습과 제도, 빈부 격차와 성차별에 관해 여러 사유를 하게 한다. 이란 최초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상업적 파괴력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 영화’라는 영화제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는 낯선 나라의 색깔과 정체성을 엿보게 하는 좋은 도구다. 조금만 들여다 보면 우리네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다. 아 참 그리고 이란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