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선제적 구조조정과 일상화된 희망퇴직

입력 2023-0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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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새해 벽두부터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다. 2023년도 경제전망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1%에 불과하며,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도 각각 0.6%, 0.0%로 예상된다.

선진국 경기가 위축된 탓에 수요가 얼어붙자 기업들이 대대적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 증권업, 유통업에서는 다운사이징과 인력감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증권업은 부동산이나 투자금융 관련 부서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직장을 떠나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업종의 기업들이 조직과 사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감원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는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인력 축소에 동참한 것이 흥미롭다.

금리 인상 덕택에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거둔 이자 수익은 66조 원, 당기순이익은 16조 원에 달한다.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린 은행들이 한편으로는 엄청난 보너스를 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대적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들은 디지털 비대면 금융의 추세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40대 관리자뿐 아니라 30대 행원까지 확대하여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3년(36개월)에 해당하는 급여에 재취업 지원비와 자녀 학자금, 의료비용 등을 포함한 위로금을 퇴직자에게 지원한다. 부지점장급 인력의 경우 보상 규모가 4억~5억 원 수준이다. 희망퇴직에 따른 보상금이 커지면서 올해 은행의 퇴직 인원이 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을 살펴보니 그 양상이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구조조정은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수익이 악화하면서 효율과 내실을 다지기 위해 이행한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기업들도 호황기에는 확장하고 불황기에는 축소하면서 구조조정 사이클이 경기주기와 맞물려 움직였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침체 전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은행권처럼 최고 호황기에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가장 좋을 때 더 이상 좋아지기 어려우니 나빠질 때를 대비해 미리 구조조정을 하자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인력 감축도 이전에는 가장 마지막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선택하였다. 고용의 유연성이 높은 미국 기업들도 전사적 인력 감축은 섣불리 이행하지 않는다. 대규모 감원은 대내외적으로 기업이 경영난에 봉착했다는 부정적 신호를 전달하여 오히려 경영위기를 가중하는 역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 공급망과 유통망 그리고 소비자와 금융기관 거래에 악영향을 미치며, 내부적으로 기업의 조직문화가 흔들리고 유능한 직원부터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가 중요하고 평생직장 개념이 강하며 노조가 강력한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감원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다음에나 이행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 기업이 어렵지 않아도 불경기가 예상되면 이를 핑계로 인력감축을 이행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은행권처럼 요란하게 인력 감축을 진행하는 것은 드물다. 대다수의 대기업들은 정부와 여론을 의식하여 ‘정리해고’를 조용히 진행한다. 저성과자나 고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간접적으로 사직을 권유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것이다.

이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인력 감축은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대기업과 은행은 구조조정보다 세대교체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활용하며, 정부는 신규 채용이 늘어 청년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는다. 노조도 직원들이 여유자금을 갖고 일찍 제2의 인생을 설계할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희망퇴직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해관계 당사자 모두가 수용하면서 희망퇴직은 한국형 정리해고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희망퇴직으로 무대가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퇴직자들은 과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제2의 희망찬 기회를 찾을지 궁금하다. 퇴직 인력 중에서 이전 직장과 버금가는 직장에 재취업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경직적 노동시장과 채용 관행 때문에 퇴직자가 동업종이나 이업종으로 수평 이동할 수 있는 고용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침체기에 전 산업에 걸쳐 광범위한 연령대로 인력 감축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재취업 기회는 더욱 희소해진다. 특히, 40대 이상의 중장년 관리자는 눈높이를 낮춰도 재취업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결국, 퇴직자의 상당수는 생계를 위해 자영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도 자영업 시장은 차고 넘친다. 편의점 수는 5만 개를 넘어섰고 커피점은 10만 개에 육박한다. 여기에 희망퇴직자까지 가세할 것이 예상되니 갑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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