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파월을 믿지 못하는 증거는 또 있었다. 미국 30년물 모기지 금리가 20년 만에 연 7%를 돌파하고 나서 2개월도 안 돼 이달 들어서는 연 6.5% 밑으로 내려갔다.
투자자들은 파월 의장이 ‘스크루지 영감’처럼 돼 ‘산타랠리’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분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양치기 소년’과 같다며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파월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땅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해 내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고집하면서 금리 인상을 주저한 업보가 돌아온 것이다.
올해 파월 의장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금리를 올린 것이다. 연준은 올해에만 금리를 총 4.25%포인트(p) 올렸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연준의 올해 금리 인상 속도는 최근 35년 사이에 가장 빨랐다.
이는 지난해 인플레이션 경고를 무시한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연준이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 전 12개월 동안 물가상승률은 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았다. 무려 1년간 행동에 나서지 않다가 뒤늦게 움직이니 무리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올해 너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다가 세계 경제를 침체 위험으로 모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해에 이어 2연속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파월 의장은 지난 몇 년간 자신과 연준이 해온 서투른 통화정책에 사과해야 한다”며 “그는 또 경제지표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일관성이 없다”고 질타했다.
스미스캐피털인베스터스의 깁슨 스미스 설립자는 “연준은 너무 멀리 갔고 너무 많은 일을 했다”고 올해 파월 의장이 저지른 실수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물가상승률이 수십 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상황이어서 연준이 비상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연준을 믿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파월 의장이 초래한 가장 큰 잘못이라 할 수 있겠다. 뉴욕증시는 14일 연준이 FOMC 성명을 발표한 오후 2시 이후 마감까지 불과 2시간 만에 무려 네 차례나 등락이 바뀌었다. 그만큼 연준이나 파월 의장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모호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파월의 행적을 살펴보면 ‘둔감함’과 ‘과민반응’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휩쓸린 2020년 봄 이후 너무 오랫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지나친 유동성을 투입하면서 현재의 인플레이션 사태를 촉발했다. 그러면서도 긴축을 펼치는 것은 너무 주저했다. 그는 올해 초가 돼서야 금리를 인상했는데 그 이후 속도는 전임자들을 능가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파월은 극과 극을 오가면서 결국 경제에 더 큰 불행을 초래하는 통화정책을 선택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조정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파월 의장과 그의 연준 동료들은 지표를 중시하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지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것도 반성해야 한다. 1년 전 이맘때 연준 위원들이 전망한 올해 말 기준금리 예상치는 연 0.75~1.00%였다. 그러나 현재 금리는 4.25~4.50%다.
새해는 절대 파월 의장이 실수해서는 안 되는 해다. 경기침체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물가도 아직 다 잡히지 않았다. 파월이 지금까지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어 새해에는 판단 착오를 하지 말고 미국과 세계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