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접어들며 절반 이상 차지
1년새 정기 예금 잔액 166조↑
불경기 지속에 '역머니무브' 심화
제2금융권 유동성 악화 우려에
대출금리 뛰며 이자부담 늘 수도
사상 처음으로 여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고금리에 예금 금리마저 치솟자 역대 가장 많은 시중 자금이 은행에 몰렸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4%대 이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나 하반기 들어 절반 이상이 '연 4% 이상'을 기록한 영향이다. 고금리에 안정적인 수익까지 보장해 매력적인 투자처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자금이 은행에 몰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으로 인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22일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21조182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654조9359억 원)과 비교하면 1년 새 166조2467억 원 증가한 셈이다.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0%대(0.5%) 기준금리를 기록하던 2020년 12월 말만 해도 전년보다 13조6734억 원 감소한 632조4076억 원에 불과했다. 이후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2021년 12월 말 기준 654조9359억 원으로 1년 새 22조5283억 원 늘었다.
올해는 기준금리가 지속해서 상승하자 정기예금 금리도 덩달아 올랐고, 5대 시중은행에선 5%대 정기예금 상품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올해 전체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증가액도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0월 현재 예금은행 정기예금의 58%(신규취급액 기준)에 연 4.0% 이상의 금리가 적용된다. 정기예금의 7.4%는 '연 5.0% 이상'의 금리로 이자를 받는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올해 6월까지 연 4.0% 이상 금리의 정기예금은 아예 없었다. 올해 1월만 해도 정기예금 절반 이상이 연 1.5~2.0% 미만의 금리 수준을 보였다. 불과 9개월 새 정기예금의 평균 금리대가 1%대에서 4%대로 3%포인트(p) 상승한 것이다.
덕분에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도 치솟았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모든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965조318억 원으로, 작년 12월 말(778조9710억 원)보다 186조608억 원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11월과 12월 증가분을 더했을 때 증가 폭이 2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해당 통계가 시작된 2002년 1월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금리가 올라 정기예금에 돈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당장 예금이자도 올라 현금만 있다면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놓고 안정적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예금 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까지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금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자산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면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은행 정기예금에만 200조 원에 가까운 돈이 몰리면서 회사채나 증권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는 돈 길이 막혔다. 최근 자금·신용 경색 사태의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예금 금리 인상과 정기예금 급증이 꼽힐 정도다.
금융당국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은행에 예금 금리 경쟁 자제 등을 당부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역머니무브에 따른 급격한 자금 쏠림도 완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서민과 취약층이 금리 상승에 따른 상환 부담과 불경기로 과도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